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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 추모제에서 만난 그 날의 기억
5·18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 추모제에서 만난 그 날의 기억
  • 엄승현
  • 승인 2019.05.19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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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생회관서 함께 농성한 조혜경 씨 “그날의 기억 잊을 수 없어요”
17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제39주년 5ㆍ18민주화운동 이세종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전북대학교 학생들이 추모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17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제39주년 5ㆍ18민주화운동 이세종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전북대학교 학생들이 추모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세종이가 계엄군을 발견하고 급하게 학생회관에 올라와 계엄군이 오는 것을 알렸죠”

1980년 5월 전국적으로 민주주의 수호의 물결이 뒤덮였고 이 물결은 전북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전북대학교 학생회관에서 농성 중이던 이세종 열사(5·18 민주화운동 첫 희생자)를 비롯한 학생 30여명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세종 열사는 ‘호남대학 총연합회(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대학 연합)’의 연락책임자로서, 전북대학교 제1학생회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고 농성장에 진입한 군인들에 쫓겨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 됐다.

당시 이세종 열사의 사인은 단순 추락사인 것으로 발표됐지만 그의 온몸에는 구타로 인한 상흔이 분명히 남아있었다.

이세종 열사의 죽음은 1998년 10월 광주 민주화 관련 보상심의회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사망자로 인정됐다.

지난 17일 전북대학교 고 이세종 열사 추모제에서 만난 조혜경 씨(당시 전북대 수학과 2학년 재학)는 1980년 5월 17일 ‘그날의 밤’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와 두려움을 느낀다고 회상했다.

조씨는 1980년 5월 17일 저녁 학생회관 2층 농성장에 있었다.

이곳에서 농성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함께 계엄군이 전국 대학을 덮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학교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피신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하고 있었다.

“그날 농성장에서 토론을 했죠. 하지만 모두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농성장을 지키기로 했죠”

회의를 마치고 각자 위치에서 농성을 계속 준비하던 중 조씨는 계엄군의 들이닥치는 불빛과 군화소리를 마주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요. 세종이는 1층에서 계엄군을 발견하고 곧장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3층으로 향했고 저는 계엄군이 계단을 오르는 군화 소리에 농성장으로 급하게 들어갔어요. 그 후 계엄군은 농성장 문을 열고 들어와 온갖 욕을 하며 무차별적으로 저희를 폭행했죠. 추후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종이는 3층으로 가 사람들에게 계엄군이 오는 것을 알리고 학생회관 옥상에서 계엄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요”

조씨에 따르면 그날 학생들은 일제히 포승줄에 묶여 이송되었고 당시 35사단의 헌병대 감옥에 수용당하면서 온갖 고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세종이는 항상 앞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었고 정말로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그의 의로운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조씨는 “그의 의로운 행동이 후대에 계속 기억되길 바라며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이세종을 기억해야 하고 국가도 이러한 희생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역사에 기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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