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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전쟁과 인류 생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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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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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일 국제 PEN한국본부 이사장
손해일 국제 PEN한국본부 이사장

“농부는 죽어도 종자를 베고 잔다(農夫餓死 枕厥種子)”는 옛말이 있다. 종자는 생명과 다름없기에 아무리 굶주려도 최후까지 고수해야 할 필수품이다. 우리나라도 옛날엔 춘궁기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워 초근목피 등 각종 구황식물로 연명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단군 이래 최고로 잘 산다는 오늘날의 한국은 얼마나 복이 넘치는가.

핵전쟁이 사망 유희라면 종자 전쟁은 생존 게임이다. 지구상에 ‘종자 저장소’가 딱 한 군데 있다. 2008년 2월 UN 산하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이 북극에서 1000km 떨어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에 약 2억 달러를 들여 축구장 절반 크기로 온도가 항상 영하 15도를 유지하는 시설을 마련했다. 핵전쟁이나 천재지변, 대홍수 등 인류 대재앙이 닥쳤을 때를 대비한 ‘현대판 노아의 방주’이다.

지구촌은 지금 씨앗전쟁중이다, 선진국들은 대규모 투자로 식물 유전자원을 확보하여 수집 보존하고, 신품종개발로 씨앗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세계 라일락 시장의 약 30%를 석권하는 ‘미스킴 라일락’이 그 좋은 사례다. 한국이 미군정시절인 1947년 미국의 식물학자 ‘앨윈 미더’가 우리의 토종 수수꽃다리속 털개회나무 종자 12알을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집해 간 뒤, 뉴햄프셔대학에서 이를 품종개량해 1954년 한국의 담당 타이피스트 이름을 따‘미스킴 라일락’이라 명명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한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에만 자생하는데 미국이 이를 신품종으로 개량해 전세계로 역수출하고 있다. 데이릴리(daylily)는 한국의 제주도 원추리를 품종개량한 것이다.

한국은 2002년부터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했다. 2012년부터 해조류를 포함한 모든 종자에 대해 최소 20년간 지적 재산권을 보장하고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한국은 IMF 위기 때 국내종자회사 5개 중 4개가 외국에 넘어감에 따라 매년 90%의 종자에 대한 막대한 로열티를 물고 있다. 2012년 세계 종자시장규모는 780억 달러(약 83조 원)라는데, 토마토 씨앗 1g에 13만원, 파프리카 씨앗 1g에 9만원, 검은방울토마토 씨앗 1g에 7만 5000원이라니 금값보다 비싸지 않는가.

우리가 즐겨 먹는 한국의 청양고추에도 비싼 로열티를 물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1998년 청양고추를 개발한 한국의 중앙종묘가 멕시코 종자화사로 넘어갔는데, 이를 미국 기업인 몬산토가 인수함으로써 매년 몬산토에 로열티를 주게 된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식량수입국이다. 자급률이 104%인 쌀을 제외하면 잔체 곡물자급률은 5%에 불과하다, 자급률은 감자·고구마 98.7%, 보리 24.3%, 콩 10.1%, 옥수수 0.9%,, 밀 0.9% 등이다.

전세계는 지금 식량위기를 맞고 있다 그 원인은 크게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생산량 감소, 신흥경제국의 곡물수요증가. 바이오연료 사용증가에 따른 곡물부족 등이다. 특히 종교와 인종갈등으로 내전중인 곳은 굶주림의 지옥이다. 곡물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 하는데 옥수수, 밀, 대두는 미국의 카길사에서 60%를 수입하고 있다. 우리 주곡의 경우 통일벼 개발을 비롯해 농학기술의 발달로 수확량이 넘치고 매년 쌀이 남아돌아 주체를 못할 정도다. 그러나 북한은 90년대 초 고난의 행군때 약 300만 명이 굶어 죽으면서도 수십년간 핵무기 개발에 매진하여 오늘날의 복잡한 핵국면을 초래했다. 북한은 70여년간 ‘이팝에 고깃국’을 공언했지만 아직도 굶주림을 못 면하고 있다. 하노이 비핵화 북미협상이 결렬된 후에도 북한이 미사일을 두 번이나 쏘아 올려 협정을 위반했는데도 이를 응징하기는커녕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두고 찬반 양론이 매스컴을 달구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손해일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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