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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② 서동요(薯童謠) 다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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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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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에 내재된 진정한 뜻…지역감정 극복, 민족화해 정신
‘마한의 터’ 익산 배경 우리나라 최초 정형시 향가의 첫 작품
‘내 복에 산다’ 설화, ‘신광공주 이야기’ 근간으로 지어져
역사적 일치 여부에 초점을 두고 설화 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익산 서동공원 서동부부상
익산 서동공원 서동부부상

2019년 4월 30일, 해체되었던 미륵사석탑이 20년 만에 복원되었다. 석탑이 해체될 때 나온 사리봉안구에 의하면 미륵사 창건 인물은 백제 무왕의 왕비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며, 사찰 건립 시기가 639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삼국유사의 무왕조 ‘서동설화’에 나오는 무왕의 왕비 선화공주와 사택적덕의 딸은 물론 같은 인물이 아니다. 설화 속의 서동과 역사 속의 무왕이 같은 인물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설화 속에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설화 전체를 역사적 일치 여부에 초점을 두고 해석하려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설화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변형되기 때문이다.

“선화공주님은 남 그윽히 얼어두고 맛둥방을 밤에 몰래 안고가다.” 이 내용은 대체로 알려진 양주동의 해석을 제시한 것이다. 서동요는 삼국유사에 전해오는 14수의 향가 중 가장 앞선 시대의 작품이며, 주지하다시피 익산 금마의 미륵사를 배경으로 한다. 향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시인바 4구체, 8구체, 10구체 향가 중에서도 서동요는 4구체의 짧은 노래이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다른 향가와 마찬가지로 서동요 역시 그 해석이 분분하다. 이는 한글이 없던 시대의 우리말을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표기한 향찰로 전해오기 때문이다. 당대와 현재의 언어 사이에 변화도 많았을 것이고, 먼 선대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지만, 후대 연구자들의 상상은 그래서 더욱 열려 있다 할 것이다.

엘리아데의 ‘역사적 인물의 신화화’라는 이론에 의하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웅은 여러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신화적 인물로 전승되며, 실재의 역사적 인물이라 해도 실제 사건들과 무관하게 다른 시대와 상황 속에서 달리 활약하면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재탄생된다. 서동요는 비록 짧은 내용의 노래이지만, ‘역사적 인물의 신화화’라는 관점에서 해석될 때 그 가치성이 재평가되고, 아울러 설화에 내재하는 진실이 현 시대의 역사적, 문학적 울림으로 전해올 수 있을 것이다.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의 14수 향가는 모두 불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포교적 성격과도 연결된다 할 것이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이 법흥왕 15년(528)이었고, 서동요는 600년경에 지어졌다고 전하니, 서동요는 불교가 한창 성할 무렵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는 다른 향가와 달리 민요이자, 동요이며, 시대적 상황, 정치적 징후 등을 암시한 참요(讖謠)이기도 한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의 미모를 흠모한 서동이 계략을 내어 아이들에게 마를 주어 이 노래를 부르게 하고, 마침내 쫓겨나는 선화공주를 만나게 되는 이 혼인담은 그 자체가 극적이며, 이를 당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이는 훨씬 풍요로운 의미망을 지닌 참요로 이해된다.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쫒겨나 신분이 천한 서동을 만나 살게 된다는 내용은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게 되는 평강공주 이야기와 동일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 두 설화는 ‘내 복에 산다’ 설화 계열과 불교 예화로 전해오는 선광공주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내 복에 산다’ 설화는 “누구 복으로 먹고 사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아버지 복으로 먹고 산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셋째 딸은 “내 복으로 산다.”고 대답하여 쫓겨나게 되고 미천한 사람과 살게 되었으나, 결국 남편을 통해 우연히 금을 얻어 잘 살게 되고 거지가 된 아버지에게 효도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20년 만에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20년 만에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바사닉왕의 딸 선광공주 이야기는 대강 다음과 같다. 위의 셋째 딸처럼 선광공주 역시 아버지에게 “저에게 업의 힘이 있기 때문이요, 아버지의 힘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여, 부왕은 거지에게 시집보내 딸의 말을 확인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거지 남편의 옛집 터에서 보물이 나와 부왕과 같은 정도로 부자가 되고, 결국 부왕은 “자기가 업을 짓고 스스로 그 갚음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게 된다. ‘내 복에 산다’ 계열의 설화는 불경에 전해오는 선광공주 이야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불교는 석가모니불을 중시하고 사찰의 불상을 중시하며 전래되어 왔으나, 사실 불교의 본래 정신은 우주 만유의 주체성과 평등성을 기본으로 한다. 남녀귀천이 있을 수 없고, 삼라만상이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장엄한 꽃으로 이해된다. 위의 ‘내 복에 산다’ 설화와 ‘선광공주 이야기’는 각 사람의 주체성과 평등성을 강조한 내용이란 점에서 공통성을 지닌다.

앞서 말한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문학의 어떤 작품이든 시대성을 담고 있지 않을 수 없다. 서동요도 여기서 예외일 수가 없다. 삼국유사의 무왕조에 담겨 있는 서동요 설화는 탄생 신화, 혼인 민담, 미륵사 창건 전설로 구분된다. 탄생 신화는 서동 즉 무왕의 어머니가 과부였으며, 연못의 용과 관계하여 서동을 낳았다는 것이다.

혼인 민담은 서동이 신라 서울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유포시켜 선화공주가 쫓겨나게 하고, 이후 결혼에 성공한 뒤 서동과 선화공주가 신라의 진평왕에게 구릉처럼 쌓인 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진평왕이 서동을 존경하며 편지를 보내게 되고, 이로부터 서동이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미륵사 창건 전설은 부인의 소원을 듣고 무왕이 미륵사를 짓게 되었다는 것이며, 진평왕이 백 명의 기술자를 보냈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의 서동요 설화에는 진평왕과 무왕 등 역사적 인물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런 역사적 인물이 설화 속에 등장하기까지에는 분명 이에 합당한 시대적 배경이 있을 터이다.

이장웅은 「신라 진평왕 시기 백제 관계와 서동설화」(2018)라는 논문을 통하여 서동설화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는 백제 서동(무왕)과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의 혼인은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중국의 ‘후한서’에 의하면 마한은 진한, 변한을 거느린 이 땅의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이장웅에 의하면 현재 전해오는 서동설화는 마한 무강왕 신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강했던 무강왕과 선화공주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하여 무왕의 설화로 변형되었고, 그렇게 해서 금마 땅에 전해오던 백제의 서동설화가 정치적 안정을 꾀하는 통일신라 시기에 다시 변형되어 삼국유사에 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동설화의 혼인담에 의하면, 무왕은 진평왕의 인정을 받아 왕위에 오르게 되고, 무왕이 미륵사를 건립할 때 많은 기술자를 파견한다. 그러나 실제의 역사 속에서는 진평왕과 무왕은 긴 세월 동안 사활을 건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관계다. 서동설화가 실제의 역사와 정반대로 ‘화해’의 이야기로 엮어진 까닭은 무엇인가.

고조선의 멸망 이후 남하한 우리 한민족의 맹주국 마한의 무강왕은 백제시기에 ‘서동’이 되어 신화적 인물로 내려왔고, 그렇게 전해온 백제의 서동설화는 통일신라기에 무왕의 설화로 변형되어 백제 유민들을 회유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으리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앞에서 말한 ‘역사적 인물의 신화화’에 의하면, 역사적 충돌은 아이러니하게 설화적 화해로 얼마든지 재탄생된다. 서동설화를 실제 역사에 대입하여 해석할 때 앞뒤 맥락이 맞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런 데 있었던 것이다. 서동설화는 삼국이 통일된 이후 민족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는 과거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골 깊은 지역감정을 안고 있다. 삼국의 치열했던 전쟁과 마찬가지로 남과 북은 6.25의 비극을 치렀고 극심한 반목과 대립 속에 살아왔다. 이런 점에서 구애의 한 방책으로 불려진 ‘서동요’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생각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동요에 내재된 정신은 화해의 정신이다. 마한의 터, 전북 익산의 노래가 지역감정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정신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김광원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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