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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건축단상] 건축 단위의 역사
[강대호의 건축단상] 건축 단위의 역사
  • 전북일보
  • 승인 2006.11.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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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건축단위 인간의 신체 기준
현재 건축에서는 모두 19세기에 제정된 미터(M: Meter)법에 의하여 국제적으로 통일된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위는 지구의 자오선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건축의 주사용자인 인간의 치수와는 사실은 무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건축의 단위는 인간 활동의 용기(容器)라는 기능에 맞도록 대부분의 인간의 성인남자 신체 크기를 기준으로한 공통점이 있다. 동양의 경우 길이 단위로는 한치(寸: 손가락 하나 굵기), 지척(指尺 : 4寸, 손가락 4개 굵기), 한 뼘(指幅: 10寸, 손가락 10개 굵기)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한 척(尺: 10寸), 한 장(丈: 10尺) 등이 사용되었다.

거리단위는 1보(步: 5-6尺), 1리(里: 1800尺), 1식(息: 30里) 등으로 표기되었다.

시대별, 국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1척을 20-30cm를 기준하였으며, 1보는 1-1.5m, 1리는 360-480m, 1식은 10-14km에 해당된다. 이는 과거 당시의 인간의 보행에 의한 교통거리로서의 개념을 보여주는 예이다.

과거의 전통적 면적 단위는 토지의 절대 크기가 아닌 토지에서 나오는 수확량으로 표현되었다.

즉, 절대 면적보다는 토지에서 나오는 수확량이 더욱 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따라서 토지면적은 그 토지에서 나오는 수확물의 부피단위로 표현되었다. 인체의 손에 의한 한 줌(홉(合): 약 0.06~0.18), 한 웅큼(되(升): 약 0.6~1.8), 한 말(斗: 약 6~18), 한 섬(石, 90~180(또는 2가마))등의 개념인 결(結: 10,000㎡ 상당), 부(負: 100㎡ 상당) ,속(束: 10㎡ 상당), 파(把: 1㎡상당), 합(合: 0.1㎡ 상당), 작(勺: 0.01㎡ 상당) 등의 단위가 면적 개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모든 단위들이 필요와 용도에 맞게 기원(起源)하고 있으며 특히 인간과 인체를 중심으로 기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자의 역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기전척(箕田尺: 35.510 cm) 고구려척(高句麗尺: 35.498 cm), 10지척(指尺: 19.42 cm), 주척(周尺: 20.795-20.450 cm), 백제척(百濟尺: 23.25 cm), 당대척(唐代尺: 29.706-30.010 cm)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1469년), 광무 6년(1902년), 강희 3년(1909년) 등에서 척도의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경국대전에서는 리(釐), 분(分), 촌(寸), 척(尺), 장(丈) 등을 정리하였다.

광무 6년에는 경국대전의 것에다 리(釐)의 1/10단위로서 호(毫)와 리(里: 1386尺)가 추가되었다. 강희 3년, 1909년에는 1905년 일본이 을사보호조약이후에 1910년의 한일합방 준비를 하기위해 계량 단위의 일본화를 이미 시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단위 한자인 호(毫)를 모(毛)로서 리(毫)를 리(厘)로서 단순화시킨 일본식 한자로 교체하여 기록하였으며, 6척에 해당하는 간(間)과 360척(60間)에 해당하는 정(町)을 추가하였고 1리(里)를 12,960尺(36町)으로 변경하여 일본의 단위체계로 통일하여 선포하였다.

1964년 1월부터 지금까지 미터법에 의하여 단위를 공식표기하고 있으나, 실제로 일제 시대에 대부분 지적도가 작성된 이후, 평, 단보, 정보 등의 일본의 단위를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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