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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공동체의 결집체를 다양성의 포용에서 찾아보자
농촌 공동체의 결집체를 다양성의 포용에서 찾아보자
  • 기고
  • 승인 2019.05.2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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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귀농·귀촌이 사회적 화두다. 자신의 우월한 색깔을 내던 도시에서 전통적 통제 시스템 속으로의 삶터 이동이다. 귀농·귀촌은 도시유전자와 농촌유전자의 충돌을 운명으로 가진다. 그 현상의 해법을 내는 정답은 거의 없다. 조상들의 단단했던 공동체 문화를 들여 다 보고 서로의 마음내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리 조상들의 마을에는 공동체 살이의 지혜가 많다. 그 실체들은 마을의 이름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내고 있다. 웃골목, 둔덕골목, 까치골목, 더턱굴, 가재골, 호랑골, 너럭바우, 제바우, 수랭소와 같은 어느 마을에서나 다 있음직한 이름들이 그것이다. 골목, 뒷산골짜기, 마을 앞 냇가에 있던 그러한 이름들은 종이에 기록하지 않고서는 다 외워내지 못할 정도다. 이러한 이름들에서 마을 공동체 문화의 속살을 살펴 볼 수 있고 그 이야기중 하나는 이렇다.

지리산의 어느 마을에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었다. 지금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당초에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졌었다. 그 사연의 구전은 이렇게 전해오고 있다.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하게 된 사람이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를 개바위라고 불렀다. 그 사람은 개 말고는, 다른 동물을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몇 달 후에 한 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 사람은 이 바위를 늑대 바위라고 불렀다. 이 사람은 개와 늑대를 모두 보았기에 개보다는 늑대의 모양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이사를 온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개와 늑대, 곰을 보았다며 이 바위를 곰바위라고 불렀다. 몇 년 후에 또 한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는 개와 늑대 뿐 아니라, 곰과 호랑이도 보았다며 호랑이를 가장 많이 닮았으니 호랑이 바위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바위 하나가 개, 늑대, 곰, 호랑이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마을은 혼란스러워졌다. 마을 촌장은 회의를 했다.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자 촌장은 결론을 내렸다.“모두가 다 맞는 말이다”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사냥을 갔다. 마을 사람들은 사냥 도중에 개, 늑대, 곰, 호랑이를 모두 보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 바위가 무엇을 닮았는지 쉽게 생각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촌장은 사람들을 모아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이 바위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이 바위를 자기의 생각대로 불렀다. 개바위, 늑대바위, 곰바위와 호랑이바위등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좀처럼 호랑이바위로 부르는 것이 통일되지 않았다. 촌장은 바위 옆에 사당을 짓고, 그 안에 호랑이 그림을 걸어 두었다. 나그네들은 그곳을 지나면서 사당 안에 걸린 호랑이 그림을 보았다. 그러더니 호랑이의 영신이 바위로 변한 것이라며 누구나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상들은 자신의 마을들을 튼튼한 공동체로 가꾸어 온 마중물을 가졌다. 그것의 도구는 구성원 개개인의 다름을 결집체로 묶어내는 촌장의 공심적 지도력이었다. 거기에 촌장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구성원들의 따름은 큰 에너지를 내어 주었다.  지금의 농촌 공동체는 귀농 귀촌인의 증가로 각자의 색깔이 진해져 가는 삶터가 되어 가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에서 구성원과 지도자의 협치 공동체를 배워 보아야 할 때다.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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