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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김정경 시집 ‘골목의 날씨’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김정경 시집 ‘골목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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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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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익숙해서 잊고 지냈던 시의 언어

불현듯 찾아온 더위가 한바탕 지나갔다. 겨우 구색만 갖춘 비가 내렸고, 날은 거짓말처럼 선선해졌다. 해 진 저녁이면 제법 쌀쌀맞기까지 하다. 뜨거운 더위가 바람을 잡아 둔 동안 잠깐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꽃을 구경하느라 꽃내음을 싣고 오는 것이 바람이라는 것. 까맣게 잊었다. 5월의 뜬금없는 더위에 한바탕 데이고 나니 바람이 전혀 사소하지 않게 되었다. 뜬금없이 날씨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김정경 시인 때문이다.

<골목의 날씨>는 바람처럼 익숙해서 잊고 지냈던 시의 언어를 곱씹어보게 한다. 책을 덮고 새삼 막바지 봄바람을 맞았다. “반찬은 있나 / 아프모 차지 말고 / 아가,” 하는 “찬란하고 따뜻하고 먼 이국의 언어”(‘멀고 따뜻하고 찬란한’ 중)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시집을 다 읽은 독자에게는 하릴없이 지나가는 순간을 만들어주지만, 정작 시를 써 내려간 작가는 아주 바쁘지 않았을까? 시집을 쉼 없이 읽어 넘기는 내내 시인의 민첩하고 집요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반복적이면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시어들도 그런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시선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마지막 작품 ‘입춘’에 도착했다. 시집의 끝에서 다시 시인의 시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입구로 돌아간 것 같았다.

“보라는 백제 유적은 안 보고 / 엄마들만 구경했다 / …(중략)… / 미륵사로 돌 나르던 아빠들은 / 다 어디에 있나” (‘미륵사 뽕짝 뽕짝’ 중)

유적은 안 봤다는 시인은 이미 엄마들도, 백제의 아빠들도 다 보고 온 것 같았다. 계속해서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늘 새로운 것들이다. 지나간 바람은 멈춰있는 나에게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다르다. 시인을 스치는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를 지나, 어디로 가는지 세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시인은 그 바람길의 잔상을 단어에 꾹꾹 눌러 담았다. “다섯 살 된 조카는 매미 허물을 모았다 // 공원에서 그것을 찾을 때가 / 제일 재미있다고 했다 // 그날 우리가 함께 모은 허물을 모두 내게 주었다” (‘사랑’ 전문) 겹겹이 쌓이다 빈 껍데기가 된 허물이 사랑이 된다. 당신이 고개를 내밀어 바라본 시인의 ‘골목’과 ‘날씨’는 어떠했는지, 문득 다시 궁금해진다.
 

최아현 소설가
최아현 소설가

*최아현 소설가는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분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공저로 <천년의 허기> 등이 있다. 현재는 꿈다락 일상의 작가 교육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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