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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황산대첩비 탁본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황산대첩비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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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0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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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대첩비 탁본 확대컷
황산대첩비 탁본 확대컷

 국립전주박물관 역사실에 들어서게 되면 거대한 비석의 탁본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높이 267cm, 폭 130cm에 이르는 탁본의 윗부분에는 한자 전서(篆書)체로 ‘황산대첩지비(荒山大捷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크게 쓰여 있다. 황산대첩은 고려 말 1380년 이성계가 장군이던 시절 전라도 남원 운봉의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탁본에 담긴 의의와 역사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 말 한반도는 외부의 침략에 의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북쪽에서는 홍건적 세력이 남하하여 개경에 이르렀으며, 남쪽에서는 왜구가 남부 내륙을 비롯하여 해안을 따라 약탈을 자행하던 상황이었다. 이 두 난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국가를 안정시킨 인물이 바로 이성계였다. 개경탈환에 큰 공을 세운 이성계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한 그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이끈 전투가 바로 남원 운봉에서 있었던 황산대첩이다. 지리산 자락까지 내륙을 침략했던 왜구의 세력은 이 전투를 기점으로 약화되었다. 황산대첩을 계기로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전북 지역에 전하는 이성계 설화의 시초가 되기도 하였다.

이 승리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선조 10년(1577)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다. 당시의 승전 사실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호조판서 김귀영이 글을 짓고 송인이 글씨를 써서 제작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비각(碑閣) 등의 다른 건물도 지어 비를 지키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비터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945년 1월에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소방대를 동원하여 비를 폭파하고 비문의 글자를 긁어 문화재를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광복 이후 사적으로 지정된 뒤 비석을 새롭게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파괴된 비석의 조각은 현재 파비각(破碑閣)을 마련하여 보관하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황산대첩비 탁본>은 비가 파괴되기 전의 탁본으로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정대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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