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6-17 01:21 (월)
[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부채, 전통을 이어가다
[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부채, 전통을 이어가다
  • 기고
  • 승인 2019.06.11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혜원 신윤복의 '쌍검대무'
혜원 신윤복의 '쌍검대무'

지난 7일은 우리나라 4대 명절 중 하나인 단오(端午·음력 5월 5일)였다. 설날, 추석, 한식과 함께 단오는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우리 선조들은 씨름, 탈춤, 그네뛰기 등의 놀이를 즐기며,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풍만한 양기를 온 몸으로 즐겼다.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속담이 있듯 단오하면 떠오르는 게 왕이 신하들에게 선물로 하사했다는 부채다. 일반 서민들도 서로 부채를 선물하며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도구로 사랑받았다.

 

△선조들의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단오와 부채

단오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선조들의 문학과 그림에도 등장한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성춘향의 만남은 단오에 이루어졌다. 단오날 광한루에 그네를 타고 있는 춘향에게 이도령이 첫 눈에 반하면서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단오와 부채를 담은 작품을 살펴보자. 신윤복의 풍속화첩 중 하나인 ‘단오풍정’은 단오날 여인들이 그네를 타고 머리를 감고 있는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그와 더불어 신윤복의 풍속화첩 30점 중 5점에서 부채가 등장한다. ‘무녀신무’, ‘쌍검대무’, ‘쌍춘야흥’, ‘청금상련’, ‘춘색만원’에 무당이 들고 있는 무선, 양반이 들고 있는 합죽선을 담은 장면이 담겨 있다. 어찌 보면 요즘 시대에 핸드폰처럼 여름에는 항상 들고 다녔던 일상용품이 부채였다는 생각이 든다.

씨름하는 풍경을 담은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에는 단오날 씨름을 하는 풍속을 담고 있다. 흥겨운 씨름판에서 부채를 들고 관람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단오 즈음 씨름판이 벌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씨름도 외에 ‘그림감상’, ‘나들이’, 담배썰기‘, ’빨래터‘, ’시주‘, ’평안감사향연도‘, ’마상청앵도‘ 등 다수의 작품에서 부채가 등장해 부채가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김홍도의 '나들이'
김홍도의 '나들이'

△1970년대 후반 부채 소비량 감소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였던 부채가 자리를 빼앗긴 건 전력을 사용해 바람을 만드는 선풍기와 에어컨이 큰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 1960년대까지는 선풍기는 부유층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1970년대 후반 삼성전자에서 ‘삼성 컴퓨터 선풍기’라는 선풍기를 출시했고 당시 가격이 2만2500원인 고가의 제품이었다.

1977년 7월 5일자 경향신문 기사 ‘생활에서 의식까지 탈바꿈 현장을 가다’를 보면 부채 대신 더위를 식히는 선풍기·에어컨에 대한 기사와 함께 전주에서 부채를 만드는 장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기사 속 사진에는 부채 장인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부채를 만드는 사진과 함께 “선풍기로 아기재우고 엄마는 들로…. 옛 정 물씬 합죽선은 토산품점에나…”라는 문구가 실려 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선풍기를 틀어놓고 부채를 만나는 장면과 함께 합죽선의 명성이 사라진다는 사진은 아이러니 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는 선풍기가 보급화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로 부채가 일상생활용품에서 토산품으로 밀려난 현실을 보여준다.

 

△대를 이어 부채 만드는 선자장들
 

김동식 '나전활실선'
김동식 '나전활실선'

부채산업의 하향세에도 부채 만들기를 멈추지 못하고 대를 이어 부채를 만드는 장인들이 있다. 전주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선자장 1인(김동식),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선자장 4인(박인권, 방화선, 엄재수 조충익), 故 이기동 선자장의 아들 낙죽장 1인(이신입)과 선자장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50년 이상 부채를 만들어온 노덕원, 유춘근, 이완생, 박상기 등 15명 이상이 부채를 만들고 있다.

김동식 선자장은 지난주 단오를 맞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합죽선을 만든지 60년의 온 정성을 쏟은 전시를 준비하는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바쁜 와중에 택배로 집에 온 오래된 부채를 손보고 있었다. 10년 전에 전주에서 샀는데 종이가 낡고 부채살이 깨져서 수선을 맡겼다고 했다. “10년 전에 만든 건데 모양이 참 좋네. 이번에 고치면 10년은 더 쓸 수 있겠어”라며 낡은 부채살을 빼내고 새로운 부채살을 깎고 있었다.

산업화에 의해 사라진 것들은 부채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주에서 부채가 만들어지는 것은 10년이 지난 부채를 곱게 싸서 수선을 맡기는 사람들의 애정과 그 부채를 고치는 장인들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형숙 전주 부채문화관 기획팀장
 

고형숙(전주 부채문화관 기획팀장)
고형숙(전주 부채문화관 기획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