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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③ 상춘곡(賞春曲) 다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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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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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인 ‘상춘곡’의 터, 세계문화유산 등재 앞둔 정읍 ‘무성서원’
상춘곡 물아일체적 풍류세계, 면앙정가·성산별곡으로 이어져
정극인의 교육철학 실천현장‘태인현’, 조선 교육체제에 영향
정극인 동상
정극인 동상

가사(歌辭)‘4음보격 연속체 율문양식의 전술’(傳述) 장르로 최초의 작품은 고려 말 나옹화상 혜근의 서왕가’(1370)로 알려져 있다. 우리말 구조에 맞는 4음보 율문이 불교 가르침을 대중에게 널리 전하고자 하는 포교의 기능으로 적합했던 것이다.

15세기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유가 사대부들이 4음보 율문 양식을 적극 수용하게 되었고, 사대부의 강호가사, 정격가사의 첫 작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상춘곡이다. 불우헌 정극인(1401-1481)의 출생지는 경기도 광주이며, 태인은 그의 처향(妻鄕)이다. 그의 묘소와 유적이 현재 정읍시 칠보면에 소재하고 있으나, 당대의 지명은 태산(泰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진(1409) ‘태인현이었다.

사대부 가사의 효시로서 정극인의 상춘곡은 우리 전북의 자랑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체로 아는 것은 이런 정도에 그치고 있다. 상춘곡의 문학적 가치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런 큰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상춘곡의 참 가치가 드러난다 하겠다.

상춘곡 등장의 가장 큰 배경은 무엇보다 정극인의 삶 그 자체이다. 그는 17세에 소과에서 장원을 차지하였고, 29세에 생원시에 입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36세 때는 기근에도 불구하고 흥천사 중건 등 대규모 불사를 자주 일으키자 태학생들을 이끌고 그 부당함을 항의하다 함경도에 귀양을 갔다 풀려난다. 이후 부인의 고향 태인에 정착하여 새 인생을 시작한다.

1436년 태인에 정착한 이후 문인으로서뿐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였고, 이는 1451년 성균관의 천거를 받아 광흥창(廣興倉) 부승(副丞)에 임명되기까지 15년 동안 이어졌다. 이후 전시(殿試)에 급제하기도 하고, 1469에는 사간원 정언(正言)에 임명되기도 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불교를 배척한 일로 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70세 되던 1470년에는 벼슬을 완전히 그만두고 다시 태인으로 돌아왔다. 10년 정도의 관원 생활 중 사간원 정언 외에는 크게 내세울 게 없는 관직 생활을 하였다 하겠으나, 특기할 만한 것은 그가 지낸 관직의 대부분은 전주부(全州府) 교수를 비롯하여 태인현 훈도까지 교관직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의 성품은 강직하였고 충언을 마다하지 않은 탓으로 여러 위기를 겪었으나, 반면 교육자로서의 뚜렷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를 실천한 곳이 태인이었다. 그의 교육자로서의 삶은 고을의 자제들을 모아 교육에 힘쓴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1472(성종 3) 3품 산관(散官)을 하사받으며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된다.

태인 고현동향약(보물 1181호)
태인 고현동향약(보물 1181호)

그는 불우헌(不憂軒)’이라는 집을 짓고 가숙(家塾)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고, 향약과 향음주례를 정해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규정을 세웠다. 정극인이 향인들과 제정하여 시행한 태인고현동향약’(1475, 보물 1181)은 조선조 최초의 향약이었으니, 이는 강호가사의 효시 상춘곡과 마찬가지로 전북문화의 또 다른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정극인이 문을 연 가숙이 이후 손제자 송세림에 의해 향학당으로 발전하고, 태인 현감 신잠의 부임 이후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동····중의 오학당체제로 확대된다.

1696(숙종 22)에는 임금이 무성(武城)’이라는 이름을 내려 무성서원이라는 사액서원이 탄생된다. 20195월 현재 정읍 칠보의 무성서원을 포함한 한국의 9개 서원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 권고로 최종 보고되었다니, 이 또한 큰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한 개인의 교육적 신념이 무성서원을 탄생하게 하고, 국가 지방교육의 체제 수립으로 진전되게 하였으니, 그 업적 지대하다 할 것이다. 사대부의 첫 강호가사 상춘곡은 정극인의 그러한 삶을 배경으로 하여 탄생된 것이다.

그가 정치적 영달에 치우치는 삶을 살았다면, 아무리 문학적 재능이 출중하다 해도 조선조 최초의 강호가사 작자로서 출현할 수 없었으리라. 개인적 큰 고비 때마다 부인의 고향 태인에 내려와 자연 속에 묻히고 교육자로서 향리의 자제들을 가르치며 지냈기에 4음보 율문체 상춘곡을 창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춘곡은 시점의 이동에 따른 경물의 변화, 시상의 흐름을 기준으로 다섯 단락으로 나눠진다. 각 단락의 일부만 인용해 본다.

紅塵(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 송죽 鬱鬱裏(울울리)風月主人(풍월주인) 되어셔라.

수풀에 우春氣(춘기) 내 계워 소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어니, ()소냐.

괴여 닉은 술을 葛巾(갈건)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노코 먹으리라. 淸香(청향)은 잔에 지고, 落紅(낙홍)은 옷새 진다.

明沙(명사)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淸流(청류)굽어보니, 니 도화로다. 武陵(무릉)이 갓갑도다. 이 긘 거인고.

공명도 날 우고, 부귀도 날 우니, 청풍명월 ()예 엇던 벗이 잇올고. 아모타, 百年行樂(백년행락)이 이만 엇지.

위의 인용문들은 각 단락 중 자연과 하나가 된 감정을 잘 담고 있는 부분들이다. 풍월주인, 물아일체, 무릉(도원), 백년행락 등의 단어들은 그 감정이 직접 드러난 시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그 풍류의 흥취를 한껏 고양하고 있는 부분이 셋째 단락이다. 이제 막 익은 술을 칡베로 걸러두고 꽃나무 가지로 먹은 술 헤아리며 맘껏 즐기겠다는 것이다. 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에 꽃향기는 술잔에 스미고, 꽃은 내 옷에 떨어진다 하니, 이게 곧 물아일체의 경지요, 무릉도원의 한 풍경이다.

성인의 도는 벼슬자리에 나아가서는 백성을 구하고, 벼슬자리에서 물러나서는 그 마음을 닦는 세계이다. 상춘곡의 화자는 이미 벼슬을 그만두고 자연 속에서 머물며 교육자로서 살기에 여념이 없는 세월을 살아왔다. 5단락의 공명도 날 우고, 부귀도 날 우니는 그런 삶을 드러내는 탁월한 표현이다. 자신이 부귀공명을 꺼린다는 말보다 차원 높은 공감으로 이어진다. 부귀공명 자체가 처음부터 자신을 멀리하는 인생으로 타고 났음을 인정하며, 이를 수용하는 심리를 담고 있다.

맹사성(1360-1438)의 연시조 강호사시가와 황희(1363-1452)의 연시조 사시가와 더불어 상춘곡의 강호가도 정신은 송순(1493-1582)면앙정가’, 정철(1536-1593)성산별곡으로 이어져 자연친화적 호남가단의 흐름을 형성한다. 문학 연구의 궁극적 가치는 문학 작품의 가치를 발굴하여 그 효용성을 확산하는 일로 귀결된다고 할 때, 상춘곡을 비롯한 일련의 고전문학은 오늘의 입장에서 새롭게 재조명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강호시가의 풍월주인에는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와 연결되는 인식론적 태도와 가치지향 의식이 담겨 있다. 자연과 인간의 생태학적 관계 설정은 오늘날 시대를 초월하여 제기되는 긴요한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풍월주인을 노래하고 있는 상춘곡등에 내재된 생태적 상상력은 생태적 위기 속에 놓여 있는 현대인들에게 녹색담론이라는 시대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자연과 어떤 관계 속에서 지속가능한 새 지평의 세계를 노래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숙제를 던져준다.

우리 전북은 조선조 최초 강호가사의 발상지이다. 정읍시 칠보에는 정극인의 묘도 잘 보존되어 있고, 2009년 정극인 동상도 세워져 정극인의 교육자적 정신과 상춘곡의 면목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전남 담양에는 2000년에 이미 한국가사문학관이 건립되어 교육, 문화, 관광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점에 비하여 다소 초라하다.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의 위상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상춘곡에 걸맞은 생태적 관점의 창의력이 발휘되고, ‘무성서원일대가 전북의 새 명소로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김광원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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