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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시인 - 송현섭 동시집 ‘내 심장은 작은 북’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시인 - 송현섭 동시집 ‘내 심장은 작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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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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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울타리, 상상력이라는 장대로 넘나들다

더러 우연을 가장해 은근슬쩍 와서는 마음에 또렷한 지문을 남기는 것들이 있다. 송현섭 시인의 동시집 <내 심장은 작은 북>도 그러했다. 이 책은 버스 시간이 남아 들어간 서점에서 우연히 내 손에 닿았다. 송현섭 시인은 ‘제6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을 받은 뒤, 곧이어 제2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시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내 심장은 작은 북>은 그 ‘좋은 어린이책’ 동시 부문 대상작이 수록된 동시집. 그동안 많은 동시를 접한 것도 아니면서 어느새 동시에 대한 생각의 울타리가 세워졌던 모양인지 이 시집이 낯설고, 기이했다. 착하고 순하고 보드라운 시어와 밝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그리는 것이 동시의 미덕이라고 여겨왔다. 송현섭 시인의 동시는 그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콧방귀도 안 뀐다.

마녀가 원숭이를 넣은 수프 끓이는 법을 제자에게 가르치고(‘마녀의 수프 끓이기’),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뱀 쇼를 보러 온 개구리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뱀은 조련사의 손을 물어버리는가 하면(‘뱀 쇼’), 아우슈비츠를 동시 안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 어쩐지 싫지 않다는 데 있다. 마녀의 수프를 먹은 것처럼 시인이 거는 마법 속으로 빠져든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범상치 않다.

이 친구 마음에 안 들어요. / 새하얀 색, 기분이 안 좋아요. / 특히나 이 친구는 주름 하나 없이 / 항상 반듯해요. 재수 없게. / 쪼그만 과자 부스러기만 떨어져도 / 부르르 몸을 떠는 것 같아요. / 이건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닌가요? / 나는 이 친구를 치료하기 위해 / 일부러 빵 부스러기를 잔뜩 뿌리고 / 여기저기 할머니 주름을 접고 / 물 한 컵 시원하게 쏟아 버리고는 / 엄마한테 꿀밤을 세 대 맞았죠. (‘식탁보’ 전문)

삐딱하고 발칙하다. 전라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아그(고)똥’하다. 유머와 그로테스크가 버무려진 시편들을 읽노라면 한껏 불량해져서 낄낄거리다가도 문득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보다 먼저 어른이 읽어보시길 권한다. 견고한 생각의 울타리들을 상상력이라는 장대로 어떻게 넘나드는지 엿보는 즐거움이 있는 까닭이다. 그런 다음에는 아이와 함께 읽어보시라. “알고 보면 아이들은 어마어마한 거인”이라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면 고가 사다리가 필요”하다는 송현섭 시인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
 

김정경 시인
김정경 시인

*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전주MBC 라디오 작가로 일하고 있으며, 시집 <골목의 날씨>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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