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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8. 찾고픈 전북 특산품 순채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8. 찾고픈 전북 특산품 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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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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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채. 한라생태숲 제공
순채. 한라생태숲 제공

“순갱노회(蓴羹鱸膾)”란 중국의 고사가 있다.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장한이 고향에서 먹던 순챗국과 농어가 생각난다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가버린 것에서 유래한다. 주로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벼슬과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산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그 고사 속의 순채(蓴菜)는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니다. 순채는 오랜 세월 우리 지역의 특산품으로 알려진 식재료이자 약재였다.

순나물이라고도 불리는 순채는 순(蓴), 수채(水菜), 금대(金帶)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다년생 수초이다. 연(蓮)과 비슷하고 자생하는 곳 또한 얕은 물이나 방죽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잎은 둥그런 연잎에 비해 타원형이고 크기가 5~10㎝이며, 봄철에서 여름 사이 탱글탱글한 투명막에 싸인 줄기와 돌돌 말린 어린잎을 채취하여 식재료로 쓴다. 5월에서 늦게는 8월까지 꽃을 볼 수 있는데, 특이하게도 암수 두 가지 모습으로 하루는 암꽃으로 피고 다음 날에는 수꽃이 되어 자색의 꽃을 피운다. 은은한 향과 매끄러운 식감의 순채는 왕의 수라상에 오르고 선비들의 사랑을 받던 고급 식재료로 산에서 나는 송이, 밭에서 나는 인삼과 더불어 물에서 나는 순채가 으뜸이라는 찬사를 듣던 신비로운 식물이다.

고려 말 학자 이색은 순채의 생김새를 “용의 침”이라 비유했고, 이익은 『성호사설』에 순채를 맛보는 것을 “신선의 취미”라 소개했으며, 서거정은 아예 <순채가>를 지을 정도로 순채를 좋아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편에 “순채를 각도(各道)에 진상하도록 했는데, 경상도와 전라도 같은 먼 도는 물에 담아 오게 되니 녹아버리기 쉬울 뿐 아니라...”하며 승정원에서 순채에 대한 진상을 아뢴 기록이 있다. 왕의 진상품이었던 순채에 대한 기록은 자생지를 비롯하여 조리법과 순채에 대한 시구로 남아 귀한 대접을 받았던 흔적을 다양한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국이상국집』 친구 집에서 순채(蓴菜)를 먹다.
『동국이상국집』 친구 집에서 순채(蓴菜)를 먹다.

순채는 『음식디미방』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비롯한 각종 조리서에 차와 무침, 국, 탕으로 조리하는 방법들이 기록되었고, 『본초강목』과 『동의보감』 등에는 해독과 해열을 하는 데 쓰이는 약재로서의 효능이 기록되었다. 위의 기를 보하고 이뇨작용이 있다고 알려진 순채는 특히 술독을 풀어주는 효험이 있다 하여 민간요법에 사용되었다. 이렇듯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순채는 고대 중국의 시집인 『시경』에 그 이름이 순(蓴)자로 실린 것을 최초의 기록으로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문인 이규보(1168-1241년)의 문집 『동국이상국전집』에 실린 <친구 집에서 순채를 먹다>외 몇 수의 시에 등장하는 순채가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얼음을 삶는다는 건 예로부터 못 들었는데 / 그대는 어찌하여 삶는다고 자랑하는가 / 불러와 자세히 보니 / 곧 순챗국을 말한 것 / 얼음 같지만 풀리지 않고 / 삶을수록 더 또렷또렷하여 / 이것이 바로 얼음 삶는다는 것인데 / 나를 놀라게 했구료...” 투명한 막으로 쌓인 새순을 얼음에 비유하여 얼음을 삶는다라 하였고, 씻고 삶아도 막이 잘 벗겨지지 않는 순채의 특성을 잘 표현한 시구이다. 이규보가 당시 전주목에서 근무하며 순채를 접했음과 고려 시대 순채의 인기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허균도 함열에서 저술한 팔도음식 소개서인 『도문대작』에 “호남에서 나는 순채가 가장 좋다”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강원과 충청도 등을 비롯하여 당시 전라도였던 제주의 두 곳을 포함한 순창, 함열, 만경과 김제 등을 전라도 순채의 산지로 기록했다.

순채가 많이 나는 지역은 순채의 ‘순(蓴)’자를 아예 지명에 썼는데 철원 순담(蓴潭)계곡, 의성 순호리(蓴湖里)와 더불어 김제의 순동(蓴洞)에는 지명에 ‘순’자가 들어간다. 순담계곡은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관주가 요양하면서 연못을 파 순채를 심고 순담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김제의 순동은 특히 소못(牛堤, 금이제)에 순채가 지천이었고, 여러 못에 자생하는 순채가 많아서 생겨난 지명이다.
 

『매일신보』 1934년 06월 01일자 기사.
『매일신보』 1934년 06월 01일자 기사.

1934년 6월 매일신보에는 김제 순채 공장에서 불이 난 기사가 실렸다. 김제를 비롯한 지금의 익산, 전주, 완주의 방죽에서 순채가 나다 보니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순채를 채집하여 병에다 넣는 순채 제조공장이 김제에 있던 것이다. 일본에서 ‘준사이(じゅんさい)’라 불리는 순채는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식재료이다. 순채 채집을 위해 일본인들이 순채 산지를 수소문하면서 순채를 마구잡이로 채취하며 수탈을 했다. 그러다 보니 기존 못이나 방죽에서 부족한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논에다 물을 대 재배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다 해방 이후 순채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가 1970년 한일국교가 정상화가 되면서 수출길이 열리자 일제시대 순채 채집기록들을 들고 일명 순채꾼(혹은 수채꾼)들이 찾아왔다. “한동안 수중전이라 불리는 순채 쟁탈전이 일어났어요. 순채가 돈이 되었응께~ 동네 아주머니들도 함석판을 배처럼 타고 순채를 따며 돈벌이를 했어요. 순채가 난다는 곳에 힘께나 쓰던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망을 보며 순채를 지켰지요. 그러던 것이 1990년대 들어서며 일본 수출 생산지가 중국으로 넘어가고, 어느 순간인가 수질이 나빠지자 오염에 약한 순채가 사라졌어요. 그러면서 방죽도 메꿔지며 그 땅에 건물이 생기고 어디는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이제 이런 기억을 하는 사람도 몇 없게 되번졌어요” 70년대부터 우리 지역에서 순채의 흥망을 함께 겪은 전병태(1948년생)어르신의 생생한 증언이다.
 

『1872년 지방지도』 김제군.
『1872년 지방지도』 김제군.

어쨌거나 청정한 환경에서 자라는 순채는 김제 순동에 이름만 남겨두었다. 현재 순채는 멸종위기 식물로 보호되며 전국에 몇몇 자생지만이 남아있고, 과거 전라도였던 제주의 한라습지생태원에 가야만 군락을 이룬 순채를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우리 지역 어딘가에는 황토물이 흘러들고 송홧가루가 날리는 청정한 물 위에 투영한 줄기를 올려 고운 꽃을 피워내는 순채가 분명 있을 것이다. 숨은 듯 자리 잡은 그 토종 순채가 찾아지면 귀히 여기며 지켜나가 지역의 생태자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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