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7-16 17:16 (화)
[고 김순영 수필가를 추모하며] 전북 여성문학계 큰 별 지다
[고 김순영 수필가를 추모하며] 전북 여성문학계 큰 별 지다
  • 기고
  • 승인 2019.06.19 2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김순영 수필가
고 김순영 수필가

우리고장 ‘여성문학계의 큰 별’ 김순영 수필가가 지난 12일 오후 향년 82세로 이승을 떠났다. 전북 문단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였다. 뒤늦게 고인의 유지에 따라 조문을 사절하고 가족장으로 치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평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고인이 모습으로 손 흔들며 떠나는 잔영을 보았다.

김순영은 정읍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광주와 전주에서 보냈다. 정읍동 초등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았으나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광주로 피난해 광주여중과 광주여고에 입학했다가 의사이자 사회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전주로 옮겨와 전주여고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태영 변호사 등 법조인을 흠앙했던 그는 이들의 뒤를 잇고 싶어 이화여대 법대를 진학했지만 2학년 봄에 교통사고를 당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해 원광대 법학과에 편입했다. 당시 아버지는 재산을 정리해 고아원을 운영 등 사회사업에 치중했고 결국 그는 전주저금관리국에서 체신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40여 년 가까이 봉직하다가 전주 동산동 우체국장으로 퇴직했다.

김순영은 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샛별 질 무렵’과 삼남일보 신춘문예 수필 ‘외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60, 70년대 신석정, 김해강, 백양촌 등을 찾아다니며 문단활동을 했으며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여류문학회 등의 창립에 기여하는 등 폭넓은 문학 활동으로 특히 전북 여류문학사의 지평을 넓혔다.

1991년 수필집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롯해서 2009년 <東이 西에서 먼 것같이>까지 10여권의 저서를 냈으며 전북문학상을 비롯해서 한국수필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등 유수의 상을 받았으며 2016년 전주문화재단의 100인의 자화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순영의 ‘수필은 사람이 걸어온 자취이며, 삶에서 찾아낸 정(精)의 뿌리’이기에 ‘재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애정으로 쓰는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수필에는 ‘단 하루도 같은 아침은 없었다.’는 그의 소소한 일상은 모두 문학을 향한 바탕임을 알려주는 글들이 숨을 쉬고 있다.

김순영은 평소 “저는 쉬운 수필이 좋아요. 여운이 남는 수필.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수필. 내가 제시하고 해결하고 답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답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의 글은 이처럼 소박하고 진솔하다. 작은 것에 감격하고, 하찮은 것에 놀라고, 별것 아닌 것에 신기해했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삶의 단편들은 깐깐하고 찰지다. 느슨하면서도 끈질기다. 전에 본 것, 들은 것, 맛본 것, 접한 것들을 매번 처음 보고, 듣고, 맛보고, 접하는 것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김순영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그가 쓴 ‘알아서 불행해진 이야기’를 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추석빔 대신에 책을 사달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딸의 제의에 얼마나 감격을 했던지 이 일을 위인전의 특별한 일화를 들려주듯 두고두고 자랑하셨다고 했다.

이처럼 오로지 수필을 위해 살고 본을 보이며 평생을 지내온 김순영 수필가의 주옥같은 수필들은 오래도록 남아 우리 후배들의 가슴 속에서 찬연히 빛날 것이다. 이제 병고에 지친 육신을 벗어 버리고 날고 싶은 수필의 세계로 훨훨 날기를 우리 후배들은 두 손 모은다.

 

/안도 전 전북문인협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