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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용사 이상구 상사 “두 번 다시 전쟁이라는 비극 발생하지 않길”
6·25 참전용사 이상구 상사 “두 번 다시 전쟁이라는 비극 발생하지 않길”
  • 엄승현
  • 승인 2019.06.24 20: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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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말부터 7월 23일까지 강원도 김화 금성전투 참여
6·25전쟁 69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전북보훈회관에서 이상구 6·25 참전유공자회 전북지부장이 비극적이었던 6·25전쟁을 회상하며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6·25전쟁 69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전북보훈회관에서 이상구 6·25 참전유공자회 전북지부장이 비극적이었던 6·25전쟁을 회상하며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전장에 두고 온 전우들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6·25전쟁 69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전북보훈회관 2층에서 만난 이상구 6·25참전유공자회 전북지부장(88)은 자신이 참가했던 마지막 강원도 김화 금성지구 전투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먹먹하단다.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이 지부장은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탓으로 출생한 지 5년이 돼서야 겨우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어려운 살림에 생계를 이어가던 중 “나라도 집에 없으면 가족들이 죽 한 그릇 더 나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19살 나이인 52년 3월 육군 제11사단 9연대에 입대했다.

“이제 막 전장에 도착한 신병이 뭘 알겠습니까. 그냥 강원도 속초에서 무작정 트럭에 타 이동하는데 곳곳에서 포탄 소리와 총소리가 들리자 진짜 전쟁터라는 생각에 무서울 뿐이었습니다.”

53년 6월 말 6·25전쟁의 마지막 전투 지역인 강원도 김화 금성지역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전투에 임하게 된다.

“뭐 대열을 정비할 시간도 없이 소대장과 분대장 지시에 따라 산 고지에 올랐어요. 그리고 곧바로 언덕 아래를 향해 총과 포를 쏘기 시작했습니다. 산 아래에서는 중공군 수천 명이 꽹과리를 치며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고 장맛비와 함께 화약 연기가 산을 덮을 정도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고지를 지키다가 함께 올라간 분대원 200명 중 생존자는 60~70명이었다. 전사한 동료들을 남기고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휴전의 소식이 전투지에 알려졌고 그를 포함한 모든 국군은 살았다는 안도감과 전쟁이 끝났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부장은 6월만 되면 당시 처절했던 전투상황과 전우를 잃은 아픔을 지금껏 잊지 못한다.

전쟁을 마친 그는 강원도 원주 38사단과 34사단 등을 거쳐 강원도 28사단에서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현재까지 전북에서 살고 있다.

이 지부장은 6·25 전쟁을 회상하며 우리 역사에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랐다.

“전쟁 속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아파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역사에 잘 기록돼 후대 사람들에게도 영원히 6·25 전쟁이 반면교사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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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20대 2019-06-25 16:35:52
정말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 지켜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역사 잊지 않고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지킬 수 있는 청년이 되겠습니다. 나라가 어서 회복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