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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재발견] 남원 만인의총, "남원은 슬프다. 그러나 찬란하다"
[전북의 재발견] 남원 만인의총, "남원은 슬프다. 그러나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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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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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할 때부터 날씨가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곧 쏟아질 듯한 하늘을 자꾸 쳐다봐야 했다. 만인의총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찌 마음뿐이겠습니까. 역사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오늘의 역사의 짐도 동시에 져야 하는 까닭에, 역사의 유적을 찾는 길은 늘 이렇게 몸이 가라앉곤 했지요.

만인의총, 어렸을 때는 ‘만인의 총’으로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무덤이라는 생각이 앞섰던 게지요. 그러나 오늘 제가 찾아가는 무덤은 ‘만인의총(萬人義塚)’입니다. ‘만 명의 의로운 지사들이 묻힌 무덤’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만인의총은 띄어쓰기해서는 안 되는 고유명사이지요.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관·군 1만여 의사들의 호국 얼이 서려 있는 성스러운 곳입니다.

만인의총을 새긴 석비(石碑)를 돌아 정문으로 들어서니, 잘 정비된 너른 터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렇지요. 죽은 이가 숨 쉬는 무덤의 뜰은 슬픈 곳이지만, 찾는 후손들은 오히려 늘 마음이 푸근해지는 모순의 공간이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나 봅니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가다 왼쪽으로 보이는 ‘만인의사 순의탑’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묵념을 드렸습니다. 비 양쪽에는 장렬한 전투 장면이 부조되어 있었습니다.

홍살문 오른쪽의 기념관에 들어갔습니다. ‘만인의총’이 새롭게 정비되기까지의 과정을 화상으로 볼 수 있고, 기록화를 비롯하여 당시의 유품과 남원부 옛지도, 그리고 왜군 남원성 침공 작전도, 임진왜란상황도, 순절한 충신들의 교지와 관련된 책자, 당시의 화포를 비롯한 여러 유물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슬프고 아픈
역사의 현장

만인의총에 대한 역사를 읽다 보면 가슴이 메어 옵니다.

1597년(선조 30) 화의의 결렬로 재침한 일본군은 호남·호서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28일부터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를 대장으로 한 1대(隊) 5만 병력은 사천으로부터 하동을 거쳐 구례로 들어오고, 그 일부는 함양을 거쳐 운봉으로 들어와 남원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당시 조선·명 연합군도 남원을 경상도·전라도·충청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겨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 방어사 오응정, 조방장 김경로(金敬老), 별장 신호, 남원부사 임현의 군사 1,000여 명과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군사 3,000여 명이 함께 방어하고 있었다.

8월 13일 일본의 주력군이 남원성을 포위하자, 동문은 양원, 서문은 모승선, 남문은 장표, 북문은 이복남이 지켰다. 14~15일 군관민이 합심하여 싸웠으나, 16일에 중과부적으로 함락되고 말았다. [다음 백과 발췌]

임진왜란 때 호남 점령의 실패가 임진왜란의 패인이라 판단한 왜적은 11만 대군으로 1597년 전라도를 침공하기 위하여 우군은 전주성을 좌군 5만6천은 남원성을 공격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하여 전라병마사 이복남 장군이 이끄는 1천여의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적은 8월 12일 남원에 당도하여 성을 겹겹이 포위하였으며, 13일부터 16일 밤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성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혈전 분투하다가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이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군4년) 사당을 건립하여 전라병마사 이복남 등 7충신을 모셨으며 1653(효종4년)에는 충렬사액이 있었고 1675년(숙종원년)에 남원역 뒤 동충동으로 옮겨 세운 뒤 1836년(헌종 2년) 사헌부지평 오흥업을 추배하니 8충신이 되었다. 그러다 1871년(고종 8년) 사우 훼철령에 의거 사당이 철폐되어 제단을 설치하고 춘추로 향사하여 왔다. 그러나 일제가 제단을 파괴, 재산을 압수하고 제사마저 금지하였다. 그러다 광복과 더불어 다시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모셔오다가 1963년 사적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1963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만인의총(구 남원역) 방문 당시 허술한 묘역을 보고 이장을 검토하도록 하여 1964년 남원시민들이 현 위치에 이전하였다. 사적 제102호였던 이곳은 이전으로 사적에서 해제되었다가 1981년 사적 제272호로 재지정 되었다. [만인의총 홈페이지에서 발췌]

치열한 전투, 중과부적(衆寡不敵)의 현장이 그려졌습니다. 그 많은 왜적을 감당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역사를 생각하면, 그중에서도 치욕스러운 역사를 보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러한 상황에 이르도록 방치하고 있었을까. 그러한 상황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또 어떠했는가.

백성, 가련한 백성들이 감당했었지요. 이 남원성 전투에서도 당시 우리 관군과 명나라의 군사가 4,000여 명 남원 성민이 6,000여 명이나 순절했다고 하니, 이 죽음을 누가 온전히 보상해줄 수 있었을까요. 만인이기는 하나 그들의 영혼의 울부짖음은 어찌 만인에 그치겠습니까. 그야말로 만인(萬人)은 ‘모든 사람’의 뜻으로 확대되어 있지 않을까요.

이제 후손인 우리가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만을 다지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민족과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합니다. 잦은 전란에도 우리가 이렇게 오늘의 역사를 쓸 수 있는 데는 이러한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바닥에 깔려 있지 않은가요. 그래서 만인이 묻혀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만인의총’에 서면 이렇게 숙연해지나 봅니다. 그리고 가슴이 울먹여지나 봅니다.

내려오는 길에 잔디 위의 작은 꽃을 봅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 내려올 때 보았다는 시인 고 은의 시구가 눈에 아립니다.

그리고 다박솔을 봅니다. 우람한 소나무가 아니라 뒷산에 흔히 볼 수 있는 볼품없는 나무도 가꾸어 심으면 저리 아름답고 의젓하다는 것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꽃도 그 나무도 만인의 순국 의사의 넋과 교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왜 오늘의 날씨가 이렇게 찌푸리고 있었는지를. 나무람이겠지요.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사실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나그네에 대한 하늘의 꾸중이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다는 것. 다시 한번 뒤돌아 묵념을 드리는데, 호국의 달 6월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을 지납니다. 이곳도 슬픈 사연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한민족이 즐겨 부르던 노래.
일반 평민들이 평안한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부르던 노래로 추정된다.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채보(採譜)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거의 사라져가던 것을 1610년 남원의 양덕수(梁德壽)가 《양금신보(梁琴新譜)》를 만들면서 이 노래를 채보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이 노래가 무엇보다도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납치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수많은 사기장이 이 노래를 부르며 망향의 한을 달래던 것이 그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져 4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의 후예들은 1673년 일본 땅에 조선의 건축양식으로 단군을 모시는 옥산궁(玉山宮)이라는 사당을 짓고, 해마다 추석에 제례를 올리면서 매일의 평안을 비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오나리 오나리쇼셔
마일에 오나리쇼셔
졈그디도 새디도 마라시고
새라난(나난)
마양 당직에 오나리쇼셔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마시고
새나마
주야장상에 오늘이소서) / 네이버 지식백과, 오늘이오늘이소서 (두산백과 인용)

아, 늘 오늘이 오늘이소서
늘 오늘이 오늘이게 하소서!
그렇게 되도록 오늘 하루도 늘 새롭게 태어나게 하소서!!!

남원은 슬펐습니다. 그러나 찬란했던 것은 그것 또한 오늘의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역사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소 : 남원시 향교동 636 만인의총
전화 : 063)636-9321
누리집 :  http://www.cha.go.kr/manin/ManinIndex.do

승용차 이용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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