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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④ 만복사저포기 다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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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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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복사’ 배경…우리나라 최초 소설집 ‘금오신화’ 다섯 편 중 첫 작품
‘억울하고 사연’ 작중 인물 여귀, 김시습 자화상
‘수양대군 왕위 찬탈’ 시대적 절망과 울분 담아
참다운 복은 ‘공’(空)의 세계임을 후세에 전달
만복사지 5층 석탑
만복사지 5층 석탑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는 불우한 시대를 만난 천재적 작가 김시습의 내면이 함뿍 담겨 있다.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이 일제의 아픔 속에서 태어났듯이, 『금오신화』 역시 세조의 정변이라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태어났다. 만해가 설악산 오세암에서 김시습의 『십현담요해』를 읽고 큰 감회를 느껴 1925년 『십현담주해』를 저술하였고, 저술 이후 바로 이어 자신의 『십현담주해』를 기초로 하여 『님의 침묵』을 창작한 것은 우리 문학사에서 참 비상한 일이요, 축복이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신동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많은 일화를 남긴다. 당시 정승 허조까지 누추한 김시습의 집에 찾아와 재주를 시험하였다. 김시습이 5세 때, 허조가 “나는 이미 늙었으니 ‘老’를 가지고 시를 지어보라.” 하니, 시습은 곧 “老木開花心不老(노목에도 꽃이 피어나고 마음은 늙지 않는다)”라 하였다. 허 정승은 참으로 신동이라 하며 경탄하였다.

이런 사실들이 세종에게까지 알려져 어린 김시습은 승정원에 들어가 그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세종은 이를 인정하고 장차 크게 쓰리라 하며 비단 오십 필을 하사하였다. 문화부흥을 크게 일군 임금답게 세종은 시정에 묻힌 김시습을 발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종의 뜻을 새기고 붕정만리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던 매월당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온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이다.

김시습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전국을 유랑하게 된다. 인간은 어떤 형태의 삶이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반영하게 된다. 극복할 수 없는 외부 상황을 만나게 될 때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 직설적으로 표출될 수 없는 내면의식이 은유와 상징의 옷을 입고 나타나면 문학이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다섯 편의 소설로 이루어졌다. 이는 고금의 괴담과 기문을 엮은 명나라 구우의 단편소설집 『전등신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괴담, 기문의 소설을 전기(傳奇)소설이라 칭한다.

금오신화는 매우 체계적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은 시대적 혼란 속에 겪는 남녀애정 이야기이고, ‘취유부벽정기’는 역사의 전통성이 단절된 시대의 절망과 울분을 담고 있어 다음 두 작품으로 이어지는 교량역할을 한다. ‘남염부주지’는 우의적인 다른 작품에 비해 “덕망이 없는 사람이 권력으로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됩니다.”와 같은 직설적 대화 내용으로 전개된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바른 이치를 회복해야 함을 역설한 작품이다. ‘용궁부연록’은 용왕의 초대를 받은 한생이 용궁 잔치에 참여하여 탁월한 문장력을 발휘하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이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 뜻을 펼칠 수 없었던 김시습이 소설에서나마 마음껏 경륜을 떨치고 꿈을 실현하는 원망충족의 작품이다.

이처럼 금오신화의 다섯 편은 기승전결의 체계적 순서로 짜여 있으며, 당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울분과 삭임, 포부, 나아가 후세에 전하고 싶은 매월당의 깨달음의 세계 등이 우의적으로 담겨 있다. 김시습이 왜 금오신화를 창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실증적 자료는 없으나, 같은 시기에 살았던 김안로(1481-1537)는 ‘용천담적기’에서 “김시습 … 금오산에 들어가 금오신화를 써서 석실(石室)에 간직하고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주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권력의 폭력 앞에 지식인의 고뇌가 얼마나 크게 일어나는가를 시대를 초월하여 뚜렷이 전달된다.

『금오신화』의 첫 작품이 ‘만복사저포기’인데, 작품의 배경을 남원의 ‘만복사(萬福寺)’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만복사는 고려 문종 때 지어졌다고 전해오며,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불에 타 소실되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이 있었고,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큰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는 몇 가지 유물만 남아 있어 만복사지(萬福寺址)로 불린다.

‘만복사저포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원의 노총각 양생(梁生)은 만복사의 불당에서 부처님께 저포(윷과 같은 기구)놀이를 청한다. 저포놀이에서 이긴 양생은 배필이 될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문득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나 부처님 앞에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하소연하며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정이 통하고 하룻밤을 함께 지낸다. 이 여인은 왜구가 침범한 난리통에 죽은 처녀의 환신이었다. 이튿날 여인의 동네로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얼마 후 여인이 돌아갈 때 여인이 양생에게 은주발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여인의 무덤에 매장한 부장품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보련사에서 다시 만난다. 여인의 부모가 치르는 재(齋)가 끝난 뒤 여인은 저승으로 떠난다. 양생은 끝내 그 여인을 잊지 못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평생을 마친다.

절 이름 ‘만복(萬福)’은 ‘만복사저포기’ 전개의 출발점이 된다. 양생과 여인은 모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처님께 복을 비는 내용이다. 죽은 여인의 혼령과 만나는 내용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 과거 이루지 못한 사랑의 꿈을 이루게 된다. 비록 허구적인 이야기이고 혼령과 이루어지는 사랑이지만, 인간의 진정한 성취는 정신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리얼리티는 확보된다.

은거와 유랑을 반복하며 살아간 매월당이 한시도 잊을 수 없이 그리워한 대상은 누구였을까. 다섯 살의 나이에 세종의 총애를 받고 비단까지 하사받은 그에게 도무지 잊을 수 없는 ‘님’은 물론 ‘세종’이었으리라. 김시습은 ‘만복사저포기’와 그 외 4편의 소설을 통해 현실적으로 해소할 수 없는 한(恨)을 삭이고 승화시키는 과정을 밟은 것이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여귀(女鬼)는 현실인 김시습을 상징한다. 왜구가 침입한 난리통에 절개를 지키려다 죽은 여귀는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기구한 운명의 절절한 사연을 부처님께 올리며 배필을 점지해 달라며 기도했다. 이는 김시습의 당대 내면의식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중인물 양생은 한을 풀지 못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여귀로 하여금 한을 풀게 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양생이 밭과 집을 모두 팔아 정성스레 재를 올린 뒤 여귀는 하직 인사를 남긴다.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승과 저승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도 이제 정업(淨業)을 닦아 저와 함께 윤회를 벗어나십시오. 양생은 그 뒤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여귀는 이승에서의 한을 풀기는 하였으나 그에게 주어진 숙제가 다 풀린 것은 아니다. “당신도 이제 정업(淨業)을 닦아 저와 함께 윤회를 벗어나십시오.” 윤회를 벗어난 세계가 공(空)의 세계이며, 그런 경지에서 맞이하게 되는 세계가 참다운 복(福)의 세계이다. 그래서 ‘만복사’이며, 김시습은 그런 화두를 만복사저포기를 통해 후세에 던진 것이다.

김시습은 ‘남염부주지’에서 원한을 품은 귀신은 처량하게 울기도 하고 여러 형태로 원망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만다고 하였으며, ‘귀신설’에서는 “지극히 잘 다스려지는 세상과 지극한 사람의 분수에는 이런 일이 없다.”고 하였다. 결국 여귀의 기구한 운명을 담고 있는 만복사저포기는 당대의 폭력적 현실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소설이요,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암시한 것이라 하겠다.

‘용궁부연록’은 세상과 합일하는 원망충족의 내용이다. 마치 평생 그리워한 세종과의 만남과 풍류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갓 꿈일 뿐, 잠에서 깨어난 한생은 명산에 들어가 생을 마친다. 금오신화를 석실에 감추고 후세를 기다린다는 말은 온갖 번뇌망상을 초월하여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체현하는 여여한 세계, 공(空)의 세계를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니었을까.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지’의 텅 빈 마당 위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다. 망초꽃대를 흔들고 사라지는 바람결에 속세의 한을 삭이며 끝없이 도를 구하던 매월당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김광원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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