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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9. 망각의 화가 진환의 무장풍경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9. 망각의 화가 진환의 무장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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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1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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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牛記)8 1943작 고창군립미술관 소장
우기(牛記)8 1943작 고창군립미술관 소장

“제가 쏜 총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진환(1913-1951년)의 죽음을 알리는 절규가 무장에 있던 그의 집을 뒤흔들었다. 6.25 전쟁 중 학도병으로 나가 스승을 적으로 오인하여 죽인 후 통곡하며 알린 제자와 집에서 불과 20여 리 떨어진 산비탈에서 죽임을 당한 그의 사연이 기막히다. 고향의 정취를 주로 그리며 이름을 알리던 화가 진환은 그렇게 사랑하던 고향에서 서른여덟 살의 젊디젊은 나이에 애통하게 생을 마감했다.

진환(본명 진기용)은 1913년 6월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무장에서 보낸 그는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부친의 뜻에 따라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전신) 상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학교를 중퇴한 뒤 서울에서 내려와 고향인 무장과 광주를 오가며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당시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며 ‘환쟁이’라 불렀던 시대였다. 더욱이 전형적인 유교 가문의 외아들인 그가 그림을 그린다 하니 집안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그럼에도 그는 반대하는 부친과 가족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제11회 베를린올림픽 예술전 입선 기사(동아일보 1936년)와 작품‘군상’앞의 진환(앉은 이).
제11회 베를린올림픽 예술전 입선 기사(동아일보 1936년)와 작품 ‘군상’ 앞의 진환(앉은 이).

진환은 동경에서 이중섭(1916-1956), 이쾌대(1913-1965) 등과 함께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해 활동하면서 많은 대회에서 입선하여 주목을 받았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지도하는 일도 했다. 그러던 중 ‘외조모 사망 급 귀향’이라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지만 그를 돌아오게 하려는 집안의 허위전보였다.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른 살의 나이에 전주 출신의 강전창(1922년생)과 결혼해 고향인 무장에서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해방 후에는 부친이 설립한 무장중학교에서 교장을 지내다가 1948년 홍익대학교의 미술과 초대교수가 되어 전쟁 전까지 서울에서 교육과 창작 활동에 몰두한다.

진환은 한국 근대미술의 여명기를 열었지만, 아쉽게도 잘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세간에서는 그를 두고 ‘망각의 화가’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활동할 때 세상을 등졌고 대부분의 작품이 유실되어 유화 8점과 수채화 및 드로잉 30여 점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소의 모습이 유달리 많다. 그가 황토화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고향의 농촌풍경과 그 속에서 우직한 삶을 이어가는 소를 작품의 중심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진환이 그린 소는 당시 농촌의 동네 어귀에서 늘 마주치던 누런 소로 그 모습은 당시 식민지하에 있던 자신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초상이기도 했다.

진환의 소 스케치. 배경으로 무장읍성과 마을의 모습도 보인다.
진환의 소 스케치. 배경으로 무장읍성과 마을의 모습도 보인다.

그가 남긴 <소의 일기>의 서문에는 “쭉나무 저쪽, 묵은 土城(토성), 내가 보는 하늘을 뒤로하고 ‘소’는 우두커니 서 있다. 힘차고도 온순한 맵시다. 몸뚱아리는 비바람에 씻기어 나무와 같이 소의 생명은 지구와 함께 있을 듯이 강하구나...”라는 대목이 있다. 등장하는 묵은 토성은 무장읍성으로 허물어져 무너진 모습으로도 켜켜이 쌓인 역사를 증언하고, 깊은 눈을 가진 소는 담담한 모습으로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견뎌 낸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다.

진환의 소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중섭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고 이쾌대와 나눈 편지에도 등장한다. “긴박한 시국에 반영된 무장의 소를 금년에는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경성의 우공들은 부리기 위한 것이고, 무장의 것은 그곳을 떠나기 싫어하고 부자의 모자의 사랑도 가지고, 그 논두렁의 이모저모가 추억의 장소일 겁니다. 형의 우공(우리 집에 있는 <심우도> 소품)은 무장의 소산이므로 나는 사랑합니다” 안부 속에 등장하는 진환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심우도>의 행방을 알 수 없어 아쉽지만, 무장의 소는 진환을 연상하는 대상으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것이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문학적 소양을 갖춘 화가로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었는데 이는 자상한 아버지의 마음뿐 아니라 당시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6.25 직전 동화책을 내기 위해 50여 편의 동시를 출판사에 넘겼지만 전쟁 통에 아쉽게 분실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고향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자작 그림책(1949년 작)에 몇 편의 동시와 그림이 남아있다.

진환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그림책. 당시의 놀이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진환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그림책. 당시의 놀이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섬마섬마 하여도 딸랑달랑 / 궁둥방아 찧여도 딸랑딸랑 / 우리 아기 잠잘 땐 같이 잠자고 / 방글방글 잠깨면 같이 깹니다”라는 동시 <쌍방울>과 “항아리 옆에 종장종장 / 요리조리 숨바꼭질 소곤소곤”이라는 <병아리> 등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의성어와 의태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리듬을 주었다. 또한 옆면을 빈 페이지로 남겨두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했다. 아들이 소장한 유작을 살펴보면 아버지의 그림 이야기 옆에 아들의 낙서가 이어져 부자간 주고받은 대화 같다.

날개달린 소
날개달린 소

그의 작품 중 날개 달린 소를 대하면 날개를 활짝 펼치지 못하고 어이없게 떠난 사연이 더욱 애달프다. 우리 민족은 전쟁을 겪으며 망실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이제는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의 지도자가 만나 함께 평화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시기에 전쟁으로 잊힌 사람들과 잃어버린 흔적들을 찾아 억울함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재조명해야 한다. 바라건대,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 근대미술의 길을 연 진환을 망각의 화가로 두지 말고 다시 날개를 활짝 펴게 하고 올곧게 평가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잃어버린 작품들의 행방도 찾아 그가 죽어서도 잊지 못했을 아름다운 고장 무장에서 그의 예술 혼이 다시 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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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니 2019-07-16 17:04:36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선생님 뿐아니라 대단하셨네요 아! 좀 더 오래사셨으면TT

mary 2019-07-12 09:03:56
소 그림 하면 이중섭 작가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진환이라는 작가도 있었군요
이 화가에 얽힌 사연도 기구하고 아직까지도 조명받지 못한 부분도 참 안타깝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