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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꽃심으로 활력에 넘쳐야 한다
도시는 꽃심으로 활력에 넘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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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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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지난해(2018년) 10월 <전주시립예술단>의 전속단체인 <전주시립극단>의 상임연출로 부임한 다음 날, 주말을 맞아 산책을 할 겸 집 근처인 조경단을 찾았다. 전주 이씨의 시조인 사공 이한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라기에 전주 이씨인 나는 족보 책에서만 읽었던 조상님을 뵙는다는 마음에 감회가 새로웠다. 허지만 조경단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아쉬움에 문틈으로 묘역과 비각만 바라보면서 조상님께 인사를 올렸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나는 주변의 울창한 나무숲을 바라보다 주차장 나뭇잎 사이에 가려진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연극인 박동화선생의 흉상이었다. 연극인 흉상이 숲속에 설치된 것은 전국에서 오직 하나뿐이다. 전주에 와서 연극을 하게 된 나로서는 전북을 대표하는 연극계 원로선생님을 뵙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흉상 앞에 잠시 묵념을 드렸다. <소리의 전당> 공연장인 연지홀 앞이나, 연극인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자리 잡았더라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북 연극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발길을 돌려 지척에 있는 전주의 대표적인 소설가 최명희 묘가 있는 <혼불 문학공원>을 향했다.

문학공원이라 이름 붙여져 많은 사람이 오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고 낙엽만 바람에 실려 바닥을 쓰는 모습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돌 판에 새겨진 작가의 글들을 읽으니 ‘혼불’의 등장인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글을 읽을 때마다 청암부인, 강모, 허요원의 삶의 흔적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꽃심’의 작가 최명희는 전주를 ‘꽃심’의 도시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녀의 묘에는 빛바랜 꽃잎이 볼품없이 떨어진 꽃다발 세 개가 몸을 비틀며 주인을 지키고 있었다.

전주 시민이 된 지 8개월이 지난 요즈음 건지산을 산책하며 즐거운 상상력에 빠진다. 전주는 ‘꽃심’의 도시고, 전주의 정신이라고 하는데 꽃을 피워내는 힘, 새로운 문화와 세상을 열어가는 강인한 힘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까? 전주를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아, 이래서 전주를 ‘꽃심’의 도시라고 하는구나” 라고 보여줄 그 방법은 무얼까? ‘꽃심’ 전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특징이 무엇일까라는 고민 때문이다. 연극을 하다 보니 상상력은 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미래의 시사회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전주역 앞의 마중길을 사시사철 꽃길로 장식하면 어떨까? 마중길은 850m라는데 너무 짧지 않을까? 경기장 사거리 로터리까지 꽃길로 장식하고 로터리엔 대형 꽃밭을 만들어 꽃심의 정점(꽃심을 상징하는 조각상)을 설치한다. 나는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 자신을 마중하는 꽃길을 보며 전주가 ‘꽃심’의 도시임을 떠올리는 생각을 하며 즐거워한다.

전주는 한옥마을로 대표되는 도시다. 그래서 양반의 도시라고도 하는데 한옥마을엔 양반이 없다. 어딜 가면 양반들을 볼 수 있을꺄? 아니다, 양반들을 거리로 불러내자! 품격있는 양반 조각상들을 만들어 전주시내 광장이며, 정거장, 공원, 쉼터로 불러내자! 다양한 모습의 양반 조각상으로 그들을 도시의 시각적 이미지로 디자인하자! 뉴욕의 황소상(charging bull)과 겁 없는 소녀상처럼! 도시는 꽃심과 양반으로 활력에 넘쳐야 한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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