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8-26 17:53 (월)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전주서 조선왕실 역사 다시 세우다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전주서 조선왕실 역사 다시 세우다
  • 기고
  • 승인 2019.07.15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조 '어제수덕전편(御製樹德全篇)'
어제수덕전편의 본문
어제수덕전편의 본문

<어제수덕전편>은 1771년 영조(英祖)가 전주에 조경묘(肇慶廟)를 건립하고 그 경위와 감회를 적은 것이다. 조경묘는 태조 이성계의 시조인 사공(司空) 이한(李翰)의 사당이다. 유교 예법 상 국가를 개창한 군주를 넘어 가계의 시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즉, 태조 이성계를 넘어 전주 이씨의 시조인 사공 이한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당시의 예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영조는 여러 논의 끝에 전주에 조경묘를 건립하였고,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사공 이한부터 태조 이성계 이전까지의 역사를 조선 왕실의 역사로 편입시켰다.

다음은 <어제수덕전편>의 일부이다.

“옛날 후직이 천 여 년 전에 먼저 덕을 심었으니[樹德] 문왕이 비로소 천명을 받았으며, 우리 조정의 시조(사공 이한)가 큰 덕과 깊은 자비로 나라를 세울[洪業] 터를 놓으시고, 여러 임금들[列聖]께서 계승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아름답도다!… 오호라! 400년 해동 조선이 (선조의)덕을 쌓고 어짊을 축적함(積德累仁)에서 비롯하였음을 이 조경묘를 통해서 알 수 있도다.”

영조는 시조 이한을 주나라 시조 후직과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써 왕실의 역사를 끌어올리고 있다. 또 400여 년의 조선 역사가 시조 이한으로부터 오랫동안 덕을 쌓고 어짊을 축적한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이 조경묘라고 적고 있다. 동시에 영조는 조경묘를 건립함으로써 왕실의 시조 공경을 모범으로 삼아 신하들이 왕실에 충성하기를 바랐다. 즉, 영조에게 조경묘는 유구한 조선 왕실의 역사를 상징함과 동시에 신하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이었던 것이다.

<어제수덕전편>은 본래 정치의 요체가 덕을 세움[樹德]에 있음을 주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구체적인 목적은 조경묘 건립의 의미를 밝힘에 있었다. <어제수덕전편>에서는 무엇보다 왕실을 존숭(尊崇)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시대적 배경과 동시에 전주가 왕실의 ‘풍패지향(豊沛之鄕)’으로써 주목되는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다.

 

/박혜인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