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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문헌 자료와 춘강(春岡) 유재영(柳在泳)
호남 문헌 자료와 춘강(春岡) 유재영(柳在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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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1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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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내가 한국 고전문학을 연구하면서 언제나 마주치는 것이 자료의 확보와 해석의 문제이다. 한국 고전문학 분야는 주로 문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자료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도 대부분의 고전연구자들이 그렇듯이 이들 문헌을 검토하고 분석한다. 그렇지만 나는 책상 앞에만 있지 않고 시간만 있으면 틈틈이 발로 뛰며 자료를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애쓰고 노력하는 만큼 새로운 자료를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호남 출신이지만 인연 따라 살다보니 성년 이후로 줄곧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고 나는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고전문학 교수로 있다가 늦게야 깨달은 바가 있었다. 오래 전 서울에서 대구까지 가서 문헌 자료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많은 호남 자료가 수장되어 있었다. 호남에서 찾아야 할 문헌이 다른 지방으로 반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호남 문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유재영 교수를 알게 되었다.

선생은 원광대 국문과 교수로 계시면서 호남 지명을 연구를 하셨다. 선생은 국어학 전공자였는데 오히려 한학으로 유명하였다. 선생은 전북 지역에 산재해 있던 2만여 권의 문헌 자료를 소장하고 계셨다. 그것은 전북 지역 내의 문중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문집을 비롯한 문헌 자료가 망라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충남 논산이나 전남 장성 지역에서 나온 다수의 자료도 있었다.

선생은 익산에 거주하면서 누군가 문헌을 가지고 있다면 불원천리하고 찾아가서 그것을 복사하고 돌려주었다. 일부 인사들이 자료를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선생은 반드시 약속을 지켰다. 나중에는 소문이 나서 원광대 유재영 교수라면 자료 제공을 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신용을 쌓고 신의를 지켜서 50여 년에 걸쳐서 전북 지역에 산재하던 대다수의 고문헌을 복사해서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이 수집해 놓은 전북 자료는 인구 이동이 적었던 70년대 산업화 이전의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산업화와 함께 인구 이동이 잦으면서 이들 자료는 전국으로 흩어졌다. 그런 점에서 선생이 수집해놓은 자료는 비록 복사본이지만 앞으로 전북 문화를 연구하는데 가치가 매우 높다. 나는 복이 많아서 춘강 선생이 평생 수집한 자료를 힘들이지 않고 빌려서 연구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사라졌던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 ~ 1910)의 『간오정선(刊誤精選)』을 선생의 서고에서 다시 찾아 연구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중국 사회과학원이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 가서 발표할 수 있었다. 중국 연구자들이 놀라는 반응이었다. 그들은 한국에 그런 독자적인 자료가 있는 줄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이제 춘강 선생이 돌아가신지 십여 년이 흘렀다.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서 고향에 있는 신문사로부터 청탁받은 칼럼을 쓰면서 새삼스럽게 제일 먼저 선생을 떠올린다. 내가 빌려간 자료가 약속보다 조금만 늦더라도 전화해서 나무라던 음성이 아직 생생하다. 선생께서 모아놓은 이들 자료는 앞으로 전북을 연구하고 언젠가 이곳 사람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갖게 할 것이다.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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