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8-22 13:59 (목)
마에다 감독의 '백만인의 신세타령'
마에다 감독의 '백만인의 신세타령'
  • 김은정
  • 승인 2019.07.18 19:5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은정 선임기자

동아시아 역사를 수십 년 동안 추적해온 일본인 다큐 감독이 있다. 마에다 겐지 감독이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다큐의 영역을 지켜온 까닭에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제작한 수백편의 다큐 속에는 일본의 침략사를 조명한 역사기록물이 적지 않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만인의 신세타령> 도 그 중 하나다. <백만인의 신세타령>은 일제 치하에서 강제 징용과 강제 노동, 정신대에 끌려갔던 피해자들의 한 맺힌 육성을 그대로 담은 기록이다. 상영시간만 225분. 7년을 꼬박 바쳐 완성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공중파 방송을 통해 상영됐지만 그다지 조명을 받진 못했다. 다큐로 제작한 <백만인의 신세타령> 이 발표되기 전, 책으로 엮은 증언집이 먼저 나왔다. 6백56쪽의 두툼한 책, 1백9명의 증언이 실린 이 책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록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책이 출간됐을 때 일본에서는 진보 지식인 뿐 아니라 언론들의 관심이 이어지면서 전화신청이 수백 건에 이르고 도쿄 간다의 책방 거리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마에다 감독은 90년대 초반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대학교수와 작가, 의사 등 각 분야에서 일하는 지식인 20여명이 참여한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제작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전쟁피해자들을 찾아다니는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7년 동안 그의 카메라와 마주한 증언자는 120여명.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증언을 받아내는 일은 그만큼 어려웠다.

그는 왜 이렇게 고단한 일을 자임하고 나섰을까. 20세기 격변기에 동아시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주목하고 살아온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우리 앞에 놓인 역사는 권력자들이 쓴 역사다. 따라서 이 역사는 실체가 아니다. 당한 사람으로부터의 역사를 밝혀내야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를 바로 볼 수 있다. 이제 조금은 빚을 갚게 된 기분이다.”

‘일본이 권력에 힘입어 제멋대로 역사적 질서를 파괴하고 강매했던 그 치부를 들춰내고 인정하는 일이 우리 스스로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던 마에다 감독의 작업은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남북한과 일본 각지를 찾아다니며 풍신수길이 자행했던 폭력의 실체를 추적한 <월하의 침략자>(2009)도 그 결실이다.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요원해 보이는 역사의 진전이 아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별샘 2019-07-21 19:26:20
영화가 재개봉되거나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네이버 영화에서는 아예 없애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