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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문화콘텐츠 개발 절실하다
동학농민혁명 문화콘텐츠 개발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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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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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전봉준이다. / 한 지경(地境, 고부군)의 인민이 강제로 빼앗김을 당하는 해(害)를 입었는데 너는 홀로 해를 입지 않았다 하니 무슨 까닭인가? 학구(學究)로 업을 삼아 전답(田畓)이라 하는 것이 3두락(斗落)밖에 되지 않아 아침에 밥을 먹고 저녁에 죽을 먹을 뿐이니 빼앗길 게 없었다. / 너는 해를 입은 것이 없는데 왜 난을 일으켰는가? / 일신의 해를 위해 기포(起包)함이 어찌 남자의 일이겠는가! 중민(衆民)이 원통하여 한탄(恨歎)하는 까닭에 백성을 위하여 해를 제거코자 일어섰다. / 다시 (삼례에서) 기포한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일본)가 개화(開化)라 칭하고 한 마디 말도, 한 장의 격서도 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도성(都城)에 들어와 야반(夜半)에 왕궁을 격파하여 국왕을 핍박하기에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으로 일어나 너희들과 접전(接戰)하여 그 책임을 묻고자 했다.”

위 문답은 전봉준 장군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후 일본 영사와 조선정부의 법무아문 심문관에게 조사를 받은 첫 번째(1895년 2월 9일) 심문기록의 부분이다. 동학농민혁명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낡은 중세사회를 개혁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였고, 일제의 침략에 맞선 반일구국항쟁이었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세계사적 차원의 동서냉전체제 구축시기에 빚어진 민족내부의 좌우대립, 민족분단,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반란사건’으로 왜곡·축소된 채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져왔다. 그러다가 지난 1994년 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전국에서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결실로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지난 2월 동학농민혁명 국가 기념일(5월 11일)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주관으로 제125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동안 역사학계, 시민사회단체, 문화예술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민주운동, 근대민족운동, 근대개혁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제는, 국가기념일이 제정된 지금 기념사업의 새로운 지평 모색에 나서야할 때인 것 같다. 새로운 지평을 모색함에 있어 이성보다 감성에 어필하는 문화예술작품을 제작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작·공연된 뮤지컬 [금강]이나 음악극 [천명]을 비롯한 여러 연극이나 마당극 작품들은 대체로 갑오년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에 방점이 두어졌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말한다. 이제는 동학농민혁명의 동아시아, 세계사적 의미와 그 위상을 되찾아 21세기 한반도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문화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열흘 전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녹두꽃]이라는 방송드라마가 종영(終映)되었다. 지난 4월부터 총 48부작으로 제작·방영된 이 드라마는 본격 역사드라마로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첫 번째 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국가기념일 제정 등으로 형성된 이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문화예술계에서 동학농민혁명 문화콘텐츠 개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세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프랑스혁명을 꽃피운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같은 동학농민혁명 주제 문화예술작품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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