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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의 추억
비키니의 추억
  • 위병기
  • 승인 2019.07.22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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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논설위원

오늘은 24절기 중 열두 번째인 대서 (大暑)다. 중복인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시내 유명한 민어탕, 삼계탕 맛집은 인산인해를 이룰거다. 중장년들이 복달임을 하는 이 시기, 해수욕장에서는 맨살이 많이 드러나는 수영복인 비키니(Bikini)를 입고 뛰어노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런데 모든게 때와 장소가 있다.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다. 대표적인게 ‘베이징 비키니’패션 아닌가. 웃통을 드러내는 노출 패션은 중국 남성들의 오랜 피서법인데 상반신 노출에 그치지 않고 셔츠 아래를 둘둘 말아올려 배만 드러낸 경우도 있다. 서방 언론은 이를 여성 비키니에 견주어 ‘베이징 비키니’라고 부른다.

올해부터 중국 일부 도시에서 ‘베이징 비키니’ 단속에 나섰다. 텐진시는 ‘공공장소 웃통 금지’ 규정을 마련, 위반자에게 벌금을 물렸고 허베이성 한단시는 교육용 동영상 까지 만들어 보급했다.

우리가 오늘날 비키니 라고 하면 시원한 수영복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은‘비키니’엔 어두운 역사가 담겨있다. 호주와 하와이 중간쯤에 있는 비키니 섬은 1954년 미국 최초의 수소폭탄이 터진 곳이다. 당시 수소폭탄 캐슬브라보의 위력은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000배나 됐다. 핵폭탄만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옷이 등장했다는 의미에서 과감한 형태의 옷을 비키니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유사이래 리틀 보이(Little Boy)만큼 쇼킹한 것도 없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코드명이다. 라디오를 통해 천황(=덴노)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 선언을 한 이후의 역사는 널리 알려진대로다. 사실 일본이 리틀 보이를 맞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1941년 12월 7일 자행한 진주만(Pearl Harbor) 습격이었다. 기습에 성공한뒤 그 유명한 암호 ‘도라 도라 도라’를 사령부에 타전하며 득의만연 했으나 결국 일본은 미국에 무릎을 꿇게 된다. 일본 군부가 분수를 모르고 맞을 짓을 해서 얻어 맞은게 결국 리틀 보이다.

종전 후 무려 74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여진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사할린을 비롯한 숱한 곳에서 들려오는 징용자들의 피울음 소리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이 해석을 달리하면서 무역전쟁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국민감정은 핏발이 서고 칼날처럼 곤두서고 있다. 병자호란때 주전파아 주화파가 그러했듯 한편에선 일전불사를 외치고 있고, 다른쪽에선 현실적 해법을 주문하고 있다. 걱정스런 것은 극우로 치닫는 일본 정부가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쾌재를 부르는게 아닌가 싶다. 그게 결국은 양국에 엄청난 부담을 줄 터인데 말이다. 비키니를 보면서 일본 당국자들이 ‘맞을 짓을 하는것은 아닌지’ 어둡던 과거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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