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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밀쳐둘 책은 없다
[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밀쳐둘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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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0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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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우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최명희문학관 학예실장

시사를 앞세운 잡지도 대부분 시·소설·수필 등 문학작품과 음식·부채·한지 등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소재로 한 글과 사진이 있다. 전주 최명희문학관이 보유한 소설가 최명희(1947∼1998)의 수필과 콩트도 『삼양』(삼양사·1982), 『창공』(대한항공·1982), 『에너지관리』(에너지관리공단·1983), 『쥬단학』(한국화장품·1983), 『영창』(영창악기·1984), 『무주라이프』(쌍방울개발·1991), 『전북의정연구』(전북의정연구소·1982) 등 문학과는 무관한 잡지에서 찾았다.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에 기증된 잡지들을 보면서 목차와 필자의 명단에 먼저 눈이 닿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일찍부터 문학 자료의 수집과 보존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 일본은 문학인의 친필·서간·필묵·일기·노트·유품 등 특수 자료와 도서·잡지·신문 등 일반 자료뿐 아니라, 문학작품이 단 한 편이라도 실려 있다면 성인잡지까지 소홀하지 않게 수장고에 간직하고 있다. 어떤 잡지든 수많은 보물이 있다.

 

△잡지에서 찾은 문학인과 문학작품
 

전북은행의 종합교양지인 『전은문예』(1990) 창간호는 최승범·진동규의 시와 우한용 소설가의 콩트를, 제2집(1991)은 이기반(1931∼2015)·황길현(1933∼2002)의 시, 송하춘의 콩트, 유기수(1924∼2007)·이봉섭(1934∼1993)의 산문, 조규화(1947∼2006)의 동화를 만난다. 표지화는 만평가인 박래윤 화가의 작품이다. 1993년 『전은가족』으로 이름을 바꾼 이 책은 그해 봄호에 소설가 이홍근(1936∼2009)의 수필을, 가을호에 전규태의 수필과 모필장 채주봉 명장을 소개한다. 『체신정보』(1989·전북체신청) 창간호는 최승범·최종규의 시와 홍석영의 산문을, 『체신정보』(1991)에는 채규판의 시와 김순영(1937∼2019)·김여화·장정자의 수필이 실려 있다.

남천 송수남(1938∼2013)의 그림을 표지에 담은 『월간 전라』(1989) 창간호는 정렬(1932∼1994)·안도현의 시와 최형(1928∼2015)·김태자·국명자의 수필이 있다. 사상가 정여립(1546∼1589)을 소재로 한 홍석영의 소설 「바람아 물어보자」도 이곳에서 연재가 시작됐다. 월간 『전북의정연구』(1991) 창간호는 전영래(1926∼2011)의 ‘전북의 얼을 찾아서’와 송영상의 ‘전라도 풍물기’가 눈에 띈다. 2000년 출간된 『‘전주사람 송영상의 전라도 풍물기』(전주문화원)의 시작이 이곳이다.

온통 예술인의 작품으로 채워진 예술단체의 기관지는 한 편도 밀쳐둘 것이 없다. 특히, 『전주예술』(전주예총·1993) 창간호에 실린 작촌 조병희(1910∼2002)의 글은 전주·전북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하고, 『전주예술(제35호)』(2001)은 소설가 형문창(1947∼2011)과 화가 김치현(1950∼2009)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전북문인협회의 기관지 『전북문단』(1987) 창간호를 펼치면 첫 장부터 ‘문학의 밤’에 작품낭독 순서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우는 문인의 사진이 이채롭다. 전북작가회의 창간호 『작가의 눈』(1997)은 시인 최형을 특집으로 소개한다.

 

△잡지에서 살피는 전북 문화사

1992년 『전북시대』 창간호는 최승범의 축시로 시작된다. 총선이 끝난 직후라 선거와 관련된 기사가 많지만, 최일남 소설가의 산문 「해장국과 비빔밥의 變態(변태)」, 대한민국 보건행정의 개척자로 불리며 평생 인술(仁術)을 펼친 이영춘(1903∼1980) 박사를 조명한 기사와 ‘고창 박물관·백과사전’으로 통하는 이기화 전 고창문화원장의 인터뷰는 지금도 챙겨야 할 내용이다. 홍석영의 콩트 「초상화」도 있다. 김용택 시인의 창간 축시를 담은 시사종합잡지 『전북저널』(1997) 창간호는 전북대 강준만·이정덕 교수, 저널리스트 김수돈, 강호동양학자 조용헌, 향토사학자 신정일의 글이 눈에 띈다.

타블로이드판에 큰 사진을 앞세운 『월간화보 전북저널』(1991) 창간호는 매월 첫째·셋째 화요일 전주 코아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이색 시장과 크라운맥주 전주공장, 전주의 유명 찐빵가게 <백일홍>의 정창석 장인의 이야기, 합죽선과 엄주원(1938∼2004) 명장을 만날 수 있다. 『지방생활』 1991년 창간호는 전주시와 완주군의 생활안내 전화번호가 절반을 차지하지만, ‘욕쟁이 할머니집’으로 불리는 <삼백집>과 당시 전주의 민중운동을 상징한 온다라미술관과 황토현문화연구회가 소개돼 있다. 『전라화보』(1995) 창간호는 장수 곱돌 석기공장과 전주 백학야간학교의 일상이 담겨 있다.

수집된 잡지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전북인』과 『책속의책』이다.

1991년 4월부터 일 년 정도 발행된 월간 『전북인』은 ‘지역을 생각하는 향토지’를 앞세웠다. 창간호에는 최명희와 전북대 왕철 교수의 대담이 실렸고, 최일남 소설가의 칼럼과 김유석 시인의 수필이 있다. 이후 발간된 잡지에도 이병기(1932∼2008)·강인한·김판용의 시와 김병용(소설가)·오정요(방송작가)·윤이현(아동문학가) 등 여러 문학인의 글이 담겨 있다. 당시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김병용은 “창간호에 실린 유학자 건암 김형관 옹의 기사는 지금도 챙겨야 할 만큼 귀한 자료”라며 “지자체와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이 땅의 문화자산이 보존되고 널리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간재 전우(1841∼1922)와 후창 김택술(1884∼1954)의 학맥을 이은 건암(1915∼1998)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핍박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전주 기린봉 아래 마당재에서 스승의 업적을 기리고 알리는 일에 평생을 바쳤으며, 『건암문집』을 남겼다.

책표지에 발행 연도를 ‘통일염원 44년’으로 쓴 『책속의책』은 1988년 금강서점(전주)·녹두서점(군산)·황토서점(익산)이 전북사회과학서점연합의 이름으로 발행했다. 사회과학서적을 중심으로 도서 안내와 독후감이 주요 내용이지만,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의 법정투쟁 소식과 전북의 민주화 운동사를 엿볼 수 있어 더 소중하다. 박창신 신부와 김용택 시인의 젊은 모습도 만난다. 당시 편집위원인 우석대 이재규 교수는 이 잡지가 총 3회에 걸쳐 발행된 것으로 기억했다. “유의미한 기록들이 누군가의 책장에 깊이 간직돼 있을 것”이라며 “민간기록물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세상에 다시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카이빙이 시급하다

잡지를 비롯한 책은 장식품이 아니다. 책장에 꽂아두거나 고이 모셔두는 것이 아니다. 펼쳐서 읽어야 책이며, 여러 사람의 손이 타서 그 내용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훼손되고 잃어버릴 위험이 높은 만큼 책 한 권이 담고 있는 가치를 연구하고 그 의미를 확산하기 위한 아카이빙을 서둘러야 한다. 전북 문학의 소중한 유산을 한데 모아 보존하고 연구하는 온전한 문학박물관을 세우고, 새로운 역사를 위한 기운을 창출해야 한다.

문학 자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 김용철·이영숙·한창섭 씨와 같은 기증자들이 활발하게 나오길 바란다.  /최기우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최명희문학관 학예실장

최기우 전주시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부위원장·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
최기우 전주시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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