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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생 홍패' 고려시대 과거 합격증…가문의 영예
'양수생 홍패' 고려시대 과거 합격증…가문의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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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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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725호 양수생 홍패
보물725호 양수생 홍패

순창 동계면 구미마을에는 600년이 넘도록 한 곳을 지킨 남원 양씨의 종갓집이 있다. 1960년 구미초등학교가 설립되었을 때 학생 모두가 남원 양씨였을 정도로, 남원 양씨는 전라북도에서 중요한 가문의 하나이다. 국립전주박물관 역사실에는 남원 양씨의 보물이자 우리나라의 보물인 ‘양수생 홍패(楊首生 紅牌)(보물 제725호)’가 전시되어 있다. 600년의 세월을 간직한 양수생의 과거합격증인 ‘양수생 홍패’는 우리를 고려시대의 역사 현장으로 이끌고 간다.

양수생(楊首生)의 아버지 양이시(楊以時, 미상~1377년)는 1353년(공민왕 2)에 생원시에 장원, 1355년(공민왕 4)에 문과에 합격하며 가문을 번창시켰다. 그는 국자감, 집현전 등에서 활동하고 당시 석학인 이색(李穡, 1328~1396년)과 교유하는 등 학문과 문장에 뛰어난 관리였다. 양수생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1376년(우왕 2)에 문과에 합격하여 집현전 제학으로 활동했다.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남원 양씨의 보물이 언제, 어떻게 고향이 전라북도로 내려오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양수생의 처 이씨 부인의 굳은 결심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양수생이 과거에 합격한 지 3년 뒤인 1379년, 집안은 큰 슬픔에 잠기게 되었다. 아버지 양이시, 아들 양수생이 한 해에 모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때 이씨 부인은 아들 양사보(楊思輔, 1377년~미상)를 임신하고 있었다. 친정 부모님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혼자된 딸이 안쓰러워 다른 집안에 시집갈 것을 권유했지만, 이씨 부인은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다며 시아버지와 남편의 과거 합격증인 홍패 2점과 족보를 가지고 남편의 고향 남원으로 내려왔다. 얼마 후 왜구 아지발도가 쳐들어와 이씨 부인은 아들 양사보를 데리고 순창으로 피난하여 터를 잡았고, 현재까지도 그 후손들이 머물고 있다. 남원 양씨는 고려의 수도에서 순창으로 터전을 옮겼지만 조선시대에 과거 합격자 30여 명을 배출하는 등 명문가로서의 면모를 유지했다.

이번 여름과 가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의 보물 ‘양수생 홍패’를 만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한 순창 구미마을을 둘러보길 권한다. /이기현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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