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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시인의 '감성 터치'] 가지런한 신발
[안성덕 시인의 '감성 터치'] 가지런한 신발
  • 기고
  • 승인 2019.08.13 22:1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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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돌 위에 신발이 가지런합니다. 속내가 시끄러울수록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한다지요. IMF 외환위기 시절 어느 중소기업체 사장님, 날마다 빚 독촉에 시달렸답니다. 콩팥이라도 내놓으라는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했답니다. 살기보다 죽기가 쉽겠다 싶어, 날마다 정갈하게 속옷을 갈아입었더랍니다. 어느 거래처에 얼마 또 어디 얼마, 정리한 부채 메모를 품에 지니고 다녔더랍니다. 철부지들이 어디 현관에 신발짝 제대로 벗어두던가요?

길이 끊겨 어쩔 수 없이 강물에 뛰어드는 이들, 가지런히 신발 벗어놓는다지요. 어느 골목을 헤맸고 어떤 짐을 지고 비틀거렸으며 어찌 한숨 몰아쉬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을 신발, 더는 필요 없을 신발, 다리 위에 가지런히 벗어놓는다지요. 화두 하나 붙들고 면벽할 스님도 선방에 들기 전 신발 가지런히 벗어둔다던가요? 자식을 아홉이나 낳으셨던 제 어머님도 산방(産房)에 들 때마다 토방에 고무신 가지런히 벗어두셨다 했지요. 신코가 안쪽을 향한 걸 보니 간단히 끝날 이야기가 아닌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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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 2019-08-16 05:22:14
댓돌 위에 가지런한 신발을 보니
아버지와 명절이 떠오릅니다.
칠 남매의 맏아들, 본인도 칠 남매를 두셨고
남동생 셋에서 얻은 조카가 11명.
댓돌에 널린 알록달록한 신발이 기본으로 26켤레
가지런함은 생각할 수도 없는 52개의 어수선함.
명절 아침, 마당 가득한 신발을 보며 흐뭇해하셨던
아버지의 환한 미소와, 식솔들 먹거리를 책임지신
어머니의 수고로움이 떠오르는 사진이네요.

검정고무신 2019-08-15 14:18:32
신발은 사람을 상징,
한문으로 밟을 리 또는 신리(履)라고 쓰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력(履歷)은 사람이
신을 신고 발로 밟으며 지나온 과거의 흔적
학업이나 직업의 역사를 말합니다.
신발이 가지런한 집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있고 빈틈없는 기품과 위용이 풍겨
도둑들도 몸을 사려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꽃 2019-08-15 11:58:53
가지런하게 벗어 놓은
스님의 하얀 고무신에서
가지런하게 벗어 놓은
꼬마의 파랑 장화에서
가지런하게 벗어 놓은
줌마들의 삐닥구두에서
무게를 벗어버린
그들만의
가지런한 자유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