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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시인의 연장이야기
농사꾼 시인의 연장이야기
  • 김은정
  • 승인 2019.08.15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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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선임기자

한 달 전,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 씨를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소개됐지만 미처 담지 못한 ‘연장이야기’가 있다. 그는 3년 전 쯤, 사라져가는 농사 연장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여든 여덟 가지 농사 연장의 구조와 원리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의 특별한 글쓰기 덕분에 책은 ‘도감이되 도감이 아닌’ 인문학적 책이 되었다. 스스로 전통세대의 마지막이나 됨직한 베이비부머라 칭하는 그는 변해가는 농촌 문화와 사라져가는 생활양식이 안타까워 연장이야기를 붙잡은 이후 온갖 자료를 찾고 고쳐 쓰기를 반복해 책으로 내기까지 꼬박 5년을 바쳤다.

그가 말하는 연장은 이렇다. 농부에게 연장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그 사람의 신체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가령 우리에게도 익숙한 괭이나 호미는 인간이 수렵 채취를 시작한 때로부터 몇 만 년이 흐른 지금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원시의 모습 그대로인데, 그는 그 이유를 ‘이 연장들이 역설적이게도 단순한 신체의 일부였기에 도구로 기능하며 거친 논밭을 일구는 것을 넘어 마을을 일구고 한 사회와 그 사회를 떠받치는 규범 즉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농사 연장은 더 이상 이런 단순한 도구가 아닌 기계들이다.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관리기 등 효율성으로만 따지자면 연장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인데, 그의 말을 더하자면 효율을 중시하는 이들 기계의 속성은 그것을 만들어낸 거대 기업, 즉 자본의 속성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그것을 사용하는 농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기의 속성대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업이 기계화되는 과정에서 농촌의 유구한 전통문화가 붕괴되어버렸다해도 농촌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얻었으니 기계의 유용함을 무작정 부정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그는 적정기술과 속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앞세운 과잉기술의 시대에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삶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맞닿아 있다.

귀 기울여지는 제안이 있다. 트랙터나 콤바인 등 기계에 의존하는 과잉기술이 필요 없는 도시 농부들의 텃밭 농사다. 그는 호미나 괭이, 낫 같은 간단한 전통농기구면 충분한 도시 농사가 ‘도구와 연장의 부활을 넘어 땅에 작용하는 푸른 노동을 통한 건강한 정신의 맥잇기 운동이자 도시문제의 한편을 해결할 수 잇는 방법’이라고 단언한다. 상상해보니 도시와 농촌의 의미 있는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겠다 싶다. 솔깃한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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