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9-17 00:47 (화)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易地思之)
  • 기고
  • 승인 2019.08.18 1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동열 전북지방법무사회 회장
정동열 전북지방법무사회 회장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사자성어로 맹자(孟子) 〈이루(離婁)〉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다.

요즘처럼 역지사지가 절실한 시국도 없다. 해결될듯하면서도 제자리걸음인 북핵문제, 과거 잘못에 석고대죄도 모자랄 판에 무역선전포고를 하고 우리의 사법주권을 흔들어보려는 일본의 아베정부, 케케묵은 이념 논리에 사로잡혀 네 탓으로 허송세월하는 정치권, 지역 여론에는 귀를 막고 국정과제임을 내세워 무리하게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인 교육감 이 모두가 상대방의 처지는 생각지도 않고 자기 논에만 물을 대려는 고약한 심보에서 기인한다.

일상생활에서 역지사지는 소통의 달인이고 만병통치약이다.

필자가 상담한 법적 분쟁 중 대부분은 조금만 입장 바꿔 생각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중재 노력에도 너 죽고 나 죽자 오기가 발동하면 어쩔 수 없다. 법정으로 향하게 되는데, 필자로서는 직업적 양심(?)에 따라 의뢰인의 주장에 촘촘한 법리의 날개를 달아 드릴 수 밖에 없다.

근래 들어 최저임금 인상, 경기침체로 음식점이나 커피숍, 노래방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설권리금을 회수하려는 상가 임차인과 권리금을 주지 않으려는 건물주간에 다툼이 잦다.

임차인은 장사가 잘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인테리어시설에 적지 않은 돈을 들였고, 건물주는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공실에서 월세가 나온다니 임차인의 편리를 봐주며 한껏 들떴다. 그 와중에 세입자가 나갈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디테일한 특약은 생략했다.

장사가 잘되면 좋겠으나 매출이 떨어지고 월세가 밀리면서 사달이 난다.

연체한 월세 충당으로 보증금 고갈이 임박하면 건물주는 건물명도소송을 제기하고, 세입자는 시설권리금 얼마라도 받아내기 위해 건물의 결로(結露)니 누수(漏水)니 생트집을 잡으며 오히려 손해배상하라고 항변한다. 이쯤 되면 역지사지라는 항생제는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서로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2~3년이 지나 소송이 끝날 즈음에는 휴지조각이나 다름 없는 판결문(또는 조정조서)과 피폐해진 영혼만 남는다. 주변에 이런 끔직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이럴 때 알아두면 좋은 예방백신이 하나 있다. ‘제소전화해제도’다.

제소전 화해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소송을 하지 않고, 법원에 미리 화해신청을 하여 판사 앞에서 강제력 있는 합의를 하는 절차를 말한다.

예컨대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거나 3회 이상 차임 연체시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부동산을 반환하고,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라는 합의를 하고 판사가 합의된 내용으로 화해조서를 작성하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당사자 일방이 합의한 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화해조서(채무명의)를 토대로 바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제소전 화해를 해 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막대한 소송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계약 위반시의 불이익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툼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화해신청서를 잘못 작성하면 제소전화해를 해 놓고도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법무사 등 전문자격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역지사지는 법무사에게는 숙명이다. 의뢰인의 재산득실과 다툼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의뢰인 입장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자신을 내려 놓고 도민들의 입장에서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있는 동료 법무사들의 건투를 빈다.

/정동열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