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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구입아, 일본은 서구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귀환하라
탈구입아, 일본은 서구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귀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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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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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온 나라가 뜨겁다. 한여름인데다가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에 따라 항일 촛불집회와 함께 일제 불매운동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올 여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이 각별하다. 역사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사실을 바탕으로 그 역사적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특히, 한국근대사에서 동학농민혁명 전후 10년의 맥락을 면밀히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동학농민혁명 10년 전 갑신정변이 일어났고, 10년 후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2019년 여름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의 본질과 문제해결의 실마리 또한 이 시기를 찬찬히 살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884년 갑신정변은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주도하여 ‘3일천하’로 끝난 실패한 정변이었다. 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일본의 근대계몽사상가이자 엔화 1만엔권 초상화 주인공인 후꾸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와 그가 설립한 사립학교 게이오 기주쿠(慶應義塾) 등으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놓치지 말아야할 대목은 갑신정변 직후 후꾸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일본 지배계층의 움직임이다. 갑신정변 당시 청나라는 프랑스와 베트남 지배권을 두고 전쟁 중이었음에도 조선에 군대를 보내 정변을 진압했다. 이런 상황은 김옥균 등 개화파를 움직여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일본에게 낭패스러운 것이었다. 그 낭패감은 갑신정변 사후처리를 위해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텐진조약(1885.3.4.) 직후인 3월 16일 일본의 일간신문 시사신보(時事新報)를 통해 후꾸자와 유키치가 주창한 이른바 ‘탈아입구’(??入歐,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라파로 들어간다)에 여실히 드러난다.

이후 일본은 영국, 프랑스 등과 연계하여 근대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특히 군사전략과 무기체계의 근대화에 혈안이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 조선은 동학농민혁명 때 ‘섬나라 일본이 대국 청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며, 설령 일으킨다 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현실은 정반대로 일본이 청나라를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 러일전쟁에서도 영국 등 서구의 지원을 받은 일본이 승리하였다. 그 연장선상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놓여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9년 여름 일본이 국제질서를 어지럽히며 대한(對韓) 경제도발에 나섰다. 우리는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면서 항일 촛불집회, 일제 불매운동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일본의 경제도발 근원과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였는가를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한편, 동아시아와 세계 지성(知性)에게 물어야 한다. 태평양 패권을 장악하려는 세력과 그 행동대를 자처하면서 군국주의 부활에 사활을 건 아베와 일본의 극우세력을 두고만 볼 것인가? 탈아입구 이후 동학농민군 대학살, 난징대학살을 비롯하여 세계대전 당시 도처에서 행해진 양민학살과 성노예 문제 등 일본이 저지른 천인공로 할 만행을 잊었단 말인가?

일본에게 경고와 함께 강력히 요구한다. 아시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책임 있는 사죄와 함께 즉시 탈아입구를 폐기하고, 탈구입아(?歐入?), 서구를 벗어나 아시아로 귀환하라!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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