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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하우스’의 선택
‘발하우스’의 선택
  • 김은정
  • 승인 2019.08.22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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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선임기자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건물들이 주목 받고 있다. 낡고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거나 도시를 재생시키는 작업이 도시의 중심 동력이 된 덕분이다.

사실 문화 복지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공간을 통해 도시를 재생시키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세계 여러 나라들에 견주어보자면 우리나라는 한참 뒤처진 후발주자다. 실제 낡은 건물은 무조건 때려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개발논리에 찌들어 있던 우리에게 기존 건물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오랫동안 낯설었겠으나 이제라도 오래된 것의 질서와 가치를 주목해 옛것과 새로운 것을 공존시키려는 인식의 변화는 반갑다.

이쯤해서 되돌아봐야 할 일이 있다. 오래된 건축물의 쓰임새를 찾아가는 방법과 과정이다.

독일 베를린 시내, 평범한 주거지역의 건물사이에 아주 작고 낡은 공연장 ‘발하우스 콘서트홀’(Ballhaus Naunystrasse)이 있다. 이 건물은 19세기, 베를린의 전형적인 사교댄스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이 공간은 베를린안의 자유로운 예술가 그룹의 창작무대이자 국제예술 무대로 활용되고 있으니 낡고 비좁은 이 공간이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사교댄스장의 변신이 아니라 콘서트홀이란 새로운 쓰임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다.

다양한 활용방안이 제안되면서 발하우스가 있는 지역 주민들과 전문가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오랫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이들이 선택한 것은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는 방식’. 낡아서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비밀통로와도 같은 계단, 오래된 시멘트 바닥,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지하의 소박하고 작은 바,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야외정원까지. 무도장을 바꾼 음악당의 100여개 객석이 아니고는 대부분의 구조물이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건물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공간의 규모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지켜온 전문적인 운영체제가 답이었다. 전문가 집단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운영하면서 전체 운영비의 3분의 1을 프로젝트 운영으로 충당할 수 있게 하는 결실을 얻어냈다.

돌아보면 우리 지역에도 재생공간이 적지 않다. 거개가 고민과 논의의 과정보다는 화려한 변신이 주목을 끈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 방점을 둔 발하우스가 오랜 논의 끝에 얻은 선택이 더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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