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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 중국집 배달일을 하는 시인과 시 쓰는 주방장의 수상한 동거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 중국집 배달일을 하는 시인과 시 쓰는 주방장의 수상한 동거
  • 디지털뉴스팀
  • 승인 2019.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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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 KBS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스틸 = KBS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스틸 = KBS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스틸 = KBS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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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 KBS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스틸 = KBS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스틸 = KBS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비옥한 무안 들판 사이, 담도 대문도 없고, 그럴듯한 간판도 없는 작은 중국집이 있다. 그곳의 주인은, 7년 전 귀향한 주방장 김경만 씨(55). 직접 농사지은 재료로, 짬뽕 국물 하나도 밴댕이, 다시마, 무 등을 넣고 정성스레 끓여낸다. 25년 경력의 손 빠른 중화요리사가 음식을 만들어내면, 뽀글머리 배달부 김을현 씨(56)가 서둘러 배달을 나간다. 그러나 무안에 온 지 1년도 안된 을현 씨가 ‘누구네 고구마밭’, ‘파란 물통 있는 집’, ‘정자’ 등 배달지를 찾아가는 것부터 난관인데... 뿐 인가, 배달 나섰다가도 예쁜 것, 좋은 것을 보면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낭만파, 틈만 나면 파리채를 기타 삼아 흥얼대는데, 주문 음식을 혼자 다 만들어내야 하는 주방장은 가끔 속이 터진다. 쥐와 고양이 같은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사실, 김을현 씨는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다. 잡지사 기자로도 일하는 그가 2년 전, 낙지 짬뽕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취재차 무안의 작은 중국집에 오게 됐다. 마침 겨울이었는데, 유명한 낙지 짬뽕보다 말수 적지만, 소탈해 보이는 주방장 경만 씨에게 호감을 느꼈다. 경만 씨도 순수하고 격의 없는 시인 을현 씨가 좋았다. 1년여 동안 광주와 무안을 오가며 시인과 주방장은 허물없는 친구가 됐다. 그러던 작년 겨울, 을현 씨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아내와 딸에게 어렵게 동의를 구하고, 무안으로 거처를 옮겨왔다. 도시 생활에 현기증을 느끼던 즈음, 마음 맞는 친구가 있는 너른 무안에서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시인과 주방장의 유쾌한 동거가 시작된 지 1년여... 중국집 창고는 시인의 작업실이 됐고, 중국집 옆 생활공간엔 봄부터 어머니(김기윤, 95)도 모셔 와 함께 지내고 있다. 막내아들이야 늘 보면 좋지만, 아침저녁으로 뜨끈한 밥상 내주는 건, 다정한 경만 씨. 노모도 살갑고 요리 잘하는 아들 한 명이 생겨 무안 생활이 더 즐겁단다.

시인과 노모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방장 경만 씨는 어떤 사람일까?

우연히 시인의 시 강의실에 몇 번 갔다가 경만 씨는 어느 날 흙 묻은 손으로 글 하나를 시인에게 내밀었다. 그게 주방장 경만 씨의 첫 시 ‘잡초의 일생’이었다. 그 뒤, ‘꼬부랑 할머니’라는 시를 문예지에 출품해 신인상까지 받게 됐고, 지금은 ‘시 쓰는 주방장’이다. 사실, 경만 씨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형수님 손에 자랐다. 어린 두 딸을 혼자 키우며 일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을현 씨를 만나고 쳇바퀴 같던 삶에 활기가 돋는다. 잡초를 뽑던 고단함을, 기역 자로 허리가 굽어버린 이모를 만나고 돌아온 밤의 슬픈 마음을 시로 쓴다.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준 친구가 경만 씨는 더없이 고맙다.

때로 삶은 한 편의 ‘詩’ 아닐까? 인생의 고단한 순간들이 모여 눈물겹지만 아름다운 시가 되니 말이다.

때로는 인생 최고의 친구로, 때로는 별일 아닌 일에도 티격태격하며 함께 지낸 지 1년... 지켜보는 이들은 ‘천생연분’이라며 웃곤 하는데, 일하다가 밭에서 뜬금없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부르고, 옥수수 팔러 갔다가 보기 좋게 허탕을 돌아오는 두 친구.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시인 을현 씨와 외로운 인생을 돌고 돌아온 주방장 경만 씨.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이어준 건 바로 ‘詩’ 였다.

오늘도 무안의 작은 중국집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아웅다웅, 옥신각신하면서도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운명’이라 말하는 두 친구.

삶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곳, 그곳에 시인과 주방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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