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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으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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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승인 2019.08.2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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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눈을 감으면 만져질 것처럼 감각되는 기억이 있다.

여름방학이 오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물 좋은 계곡으로 갔다. 물가에서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알았지만 나는 물이 싫었다. 물장구를 크게 쳐서 옷이 다 젖으면 쨍쨍한 날에도 오들오들 떨렸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물살이 뒤를 덮칠 것 같아 무서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계곡물이나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은 무방비상태라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그 기억은 어린 시절 내내 알 수 없는 공포로 남아 있었다.

물가와 풍경을 보는 일은 좋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 내 살갗이 접촉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실체였다. 시간이 지나 수영 강습도 받고 관광지에서 얼떨결에 스킨스쿠버도 하며 막연한 공포는 막연하기만 하다는 걸 알게 됐지만, 아직 물속은 친숙해지지 않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피하고 모른 척 두면 영영 물과 가까워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어쩌면 물을 알고 있다는 경험이 알지 못하는 공포를 끌어당길 수도 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쉽게 가늠하지 않기 위해 물과 자주 닿고 싶다.

“계속 헤매고 있다고? 내가 그쪽으로 갈게!”

책방을 찾아오는 지인들과 통화하며 자주 하는 말이다. 주소를 찍어도 정확하게 잘 안내되지 않아 손님을 찾으러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다. 그날도 어김없이 근처를 헤매는 여자 후배들을 발견하고 책방으로 함께 왔다. 이십 년 넘게 전주에 살았지만 한 번도 온 적 없는 동네라는 말이 따끔했다. 2월, 오후 다섯 시가 넘자 해는 뚝 떨어지고 있었다. 컴컴해진 창을 보며 마감하려던 찰나, 책방 앞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족히 190cm가 넘어 보이는 장신의 외국인 남성 두 명이었다. 유리창을 기웃하며 보는 그들의 눈빛은 몹시 갈급해서 해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드디어 책방에 온 첫 외국인 손님인가? 나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들은 해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얼마야?”

한국말이었고 발음도 정확했다. 나는 그들의 의도를 망각하고 명랑하게 다시 물었다.

“책이요?”

그들은 책이나 서점이란 우리말도, ‘북’이나 ‘북스토어’라는 영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책을 들고 손짓을 보탰지만 상황은 더욱 이상해졌다. 저녁의 성매매 집결지, 활짝 열린 유리문의 책방, 마주 본 이방의 얼굴들, 서로 느꼈을 여기는 어딘가, 나는 누군가… 영업 중인 성매매 집결지 한가운데 문 연 책방은 여러 사람의 머릿속을 물음표로 채우고 있었다.

모르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니나 중요한 것은 이날부터 선미촌을 향한 감각이 더욱 선명해졌다는 사실, 이때부터 내 안에 새로운 질문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용기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닌, 실체라는 말도 어쩌면 거추장스러운 자연스러움.

그들과 무사히 안녕한 후 책방 문을 닫고 선미촌을 걸어 나오며 후배들이 말했다. “찾아오기 쉽지 않아서 더 오고 싶은 공간이 될 거에요.”

꿋꿋이 찾아와준 이들의 말 속에 질문이 있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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