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9-18 20:46 (수)
[반짝반짝 전북문화] 익산에서 만나는 세계유산여행 "백제 왕도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접하다"
[반짝반짝 전북문화] 익산에서 만나는 세계유산여행 "백제 왕도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접하다"
  • 기고
  • 승인 2019.08.26 15:2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천 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백제는 익산과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백제 왕도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곳이 익산이었지요. 마을 캐던 아이였던 서동이 백제의 왕위에 올라 ‘무왕’이 되어 익산에 화려한 백제의 흔적을 남겨두었는데 그의 흔적을 가장 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백제 역사 유적지 미륵사지와 쌍릉, 왕궁리 유적을 돌아보면서 익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여행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백제 최대의 가람이 있던
미륵사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 있는 미륵사지는 서쪽 석탑의 보수를 끝내고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동쪽의 석탑은 서쪽의 탑이 복원 보수를 하는 긴 시간 동안 미륵사지를 묵묵히 지키고 있더니 서탑까지 가림막을 치운 온전한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니 왠지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정적인 느낌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답게 미륵사지는 넓은 절터에 존재감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서탑으로 가기 전에 무심코 지나치곤 했던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두 석탑 못지않게 중요한 문화재였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된 하대석만 남아있는 석등재는 현재 2기가 남아있는데 1기는 서탑으로 가기 전 법당 터 사이에 있고 다른 1기는 중앙의 목탑 터와 법당 터 사이에 있습니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 장식을 얹어두는데 3단의 받침돌 중 아래 받침돌만 남아있습니다. 사각의 바닥 돌 위에 놓인 아래 받침돌은 윗면에 8잎의 연꽃을 두르고 그사이에도 작은 잎을 조각해두었습니다. 연꽃무늬의 모습이 이 절터에서 발견된 연화문 수막새와 비슷하고 지금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인 것으로 미륵사의 창건 시기와 비슷한 백제 무왕 때의 작품으로 추측됩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등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석등의 처음 양식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맨 윗면에는 윗돌을 꽂아두기 위한 둥근 홈이 나 있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 옥외전시관에 미륵사지에 나온 석등 부재를 활용하여 미륵사지 석등 2기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화사석과 옥개석만 원래 부재고 나머지는 새로 조성된 것이지만 완전한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석등을 제작한 나라는 백제임을 밝히고 있으며 미륵사지가 보여주는 백제문화는 소중하지 않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복원된 서탑은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나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를 걷어낸 대로 복원하였기에 창건 당시의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습니다. 미륵사의 3탑 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도 놀랍지만 미륵사지 석탑은 고대의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복원 보수를 마친 서탑을 둘러보면서 목재를 짜 맞추는 결구기법을 사용한 외양과 석실 무덤의 공간 조성기술이 그대로 사용된 1층 내부의 설명도 들었습니다. 2층 이상 내부는 벽돌탑을 쌓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지금의 복원 모습이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문화재의 모습 같아 더 정답게 느껴집니다.

미륵사지 석탑 옆으로 새로 조성된 국립익산박물관에서 미륵사지를 발굴, 조사하는 동안 수습된 문화재를 보기도 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많은 문화재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서탑 해체와 복원 과정에서 나온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장엄구와 사리봉영기의 해석은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주었습니다.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와 관련된 글은 역사책을 보는 듯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사리 구멍에서 함께 나온 금판과 은제 관모 꾸미개는 그때 당시 시주했던 것이랍니다. 사리병이나 유리구슬 등을 만들었던 기술력은 그저 감탄만 절로 나오게 했습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둘러볼 만한 박물관이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문의처: 063)830-0900

 

유적지를 통해 본
백제 이야기

백제 말기 무왕과 선화 공주의 능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
백제 말기 무왕과 선화 공주의 능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

다음 이동지는 익산 쌍릉이었습니다. 대왕릉과 소왕릉 두 능이 있는 곳으로 백제 말기 무왕(600~641)과 선화 공주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71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대왕릉의 현실은 장방형으로 벽은 화강암 판석을 다듬어 세웠으며 천장과 벽 사이에 육각형의 말각부재를 끼워 구축해 놓았다고 합니다.

소왕릉은 전면 중앙에 짧은 연도가 있으며 입구는 판석으로 막아 놓았답니다. 두 능은 모두 같은 시대의 것으로 발굴조사 이전에 도굴당하였으나 부패 된 목관과 토기 등이 수습되어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2018년에 백제문화유산주간에 대왕릉의 경우 발굴조사를 다시 시작하여 내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등의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다시 덮어 원형의 봉토만 볼 수 있습니다. 출토유물과 현실의 규모, 형식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비슷하여 백제 말기의 형식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왕릉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가림막에 둘러있어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소왕릉의 내부 모습이 공개되어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았습니다.

<익산 쌍릉>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쌍능길 135-19
문의처: 063)859-5797

새로운 도약을 꿈꿨을 백제의 마지막 왕궁, 왕궁리 유적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왕궁리 유적의 관람도 인상 깊었습니다.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지를 보고 놀랐던 점은 유적지의 규모였습니다. 얼마나 넓던지 백제 왕궁의 궁궐터였을 거라는 말이 이해되었습니다.

초록 잔디 사이로 우뚝 서 있는 왕궁리 오층석탑도 존재감이 확실했고 빈 곳으로 조성된 건물터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궁리 5층 석탑은 고려 시대 이곳이 사찰일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라 백제 시대의 것은 아닙니다. 백제 궁궐이었을 당시엔 목탑이 있었답니다.

1989년부터 발굴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궁궐의 담장과 후원 영역은 2017년에 정비를 마무리하고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왕궁리 유적은 7세기 백제 무왕 당시 조성한 궁궐터로 확인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2018년에 북동편 구릉을 중심으로 조성된 후원의 네모난 연못과 구불구불한 물길, 화려한 정원석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백제 무왕이 ‘금마저’라 불리는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자 얼마나 준비를 했을지 건물이라고는 오층석탑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그 마음이 느껴지니 신기했습니다. 무왕은 이곳에 궁궐을 조성할 때 백제 부흥의 꿈을 꾸고 익산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꿨을 것입니다. 무왕 사후 19년이 지난 뒤 백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왕궁리 유적이 더 눈에 담깁니다.

드넓게 펼쳐진 왕궁리 유적지에서 역사적인 상상력을 펼쳤다면 실제 발굴된 유물로 백제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왕궁리 유적 전시관이었습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면서 왕궁리 궁궐은 통일신라의 사찰이 되었고 서서히 역사의 흐름에 따라 폐허가 되어 오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의 수도임을 증명하는 ‘수부(首府)’라고 적힌 기와와 왕궁리라는 이름, 왕궁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많은 금동제품이 이곳이 궁궐로 사용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시실에 마련된 디오라마로 복원된 왕궁리 유적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인증서가 오래도록 기억되었습니다.

익산의 백제유적은 오래된 백제 역사보다 덜 알려진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관심을 가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지를 여행하면서 백제의 마지막 왕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왕궁리 유적>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문의처: 063)859-4632

/글·사진 = 이난희(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서와 2019-08-27 11:30:24
일본식민지 노예시절 왜백제사를 반도에 이식시켰습니다.
한반도는 뎐아도 남부 반도섬인 기자도《箕子島》입니다.
정신들차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