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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건드린 조국
‘역린’ 건드린 조국
  • 위병기
  • 승인 2019.08.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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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논설위원

여고 동창 모임에 나가서 절대 언급해선 안되는게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자녀 진학이나 취업, 결혼 얘기, 둘째는 남편 수입 얘기, 셋째는 살고있는 집 크기라고 한다. 우스갯소리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민감한 사항이고 잘못하면 즐거워야 할 자리가 서로 비교하게 되면서 언짢아질 수 있다는 거다. 그중에서도 자녀 입시 문제를 잘못 물어봤다가는 감정을 상하기 십상이다. 역린이기 때문이다.역린(逆鱗 )이란 ‘한비자’에 나오는 말인데 용의 목에 거슬러 난 비늘을 의미한다. 군주의 노여움을 비유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용이란 짐승은 잘 친해지기만 하면 올라탈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목 아래에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이 있는데 만약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사람인지라 자칫하면 역린을 건들기 십상이다. 어린 시절 토끼를 많이 키워 본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아는게 있다. 그렇게 순하기만 한 토끼도 사람들이 귀엽다며 자기 새끼를 건드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할퀴거나 물리기 십상이다.

교육계에 아주 유명한 사건이 있다. 1965학년도 입학시험 당시의 무즙파동이다. 중학입시 자연과목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란 문제가 있었다. 출제위의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으나 다수 학생들이 무즙을 선택했다. 이 문제 하나로 당락이 갈린 학생들의 부모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열성 부모들은 아예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엿이나 먹어라” 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고 모두 38명의 학생이 명문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됐다. 그런데 유력자 자녀 21명이 덤으로 부정입학을 했다.

부정입학 관련자 중에는 청와대 정무비서관, 공보비서관 등도 포함됐다. 무우즙 파동은 문교부 수뇌부나 청와대 비서관의 목을 날렸다. 반세기도 더 지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1993년 초반, 김영삼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최형우 당 사무총장이 아들의 대학 부정입학 문제로 낙마했다. ‘좌동영, 우형우’란 말이 있을만큼 YS에겐 김동영, 최형우가 최측근 참모였다. 이때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는 말이 그 유명한“우째 이런 일이”였다.

요즘 정계의 뇌관으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떠올랐다. 조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린이나 마찬가지인데 야권이 그 역린을 건드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조 후보자의 딸 입시 문제가 대한민국 학부모들에게 또 하나의 역린이었다. 당연히 휘발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권력 실세의 부침이라는 점 말고도, 이번 사안은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 자녀 입시 문제가 역린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말이 나와선 안된다. “우째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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