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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형미 시인 - 하기정 시집 ‘밤의 귀 낮의 입술’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형미 시인 - 하기정 시집 ‘밤의 귀 낮의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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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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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위험하지 않은’ 세계

언어에도 삶이 있다. 하기정의 시는 우리가 일상에서 꺼내 보이는 흔한 언어는 아니다. 약간은 주저하고 망설여지는, 쉽게 내뱉어지지 않는 언어들이다. 이를테면 통증, 비관론자, 증오, 불안, 징후 등. 입 밖으로 꺼내놓는 순간 사람들 간의 관계를 보편성에서 흩트리고, 불편하게 할 것만 같은 언어들. 한마디로 아웃사이더이면서 방외지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기정의 시집에서는 방외지사적인 그 언어들끼리 모여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만났다가 헤어지곤 하면서 저희들만의 영토를 구축한다. “당신의 심장과 무릎(?당신의 심장과 무릎과?)”처럼 거리가 있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언어들끼리 만나 자연스럽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영토이다. 즉 전혀 만나질 수 없는 심장과 무릎이지만, 몸을 구부려 다리를 껴안음으로 해서 서로 닿을 수 있게 되는, 그런 원리인 것이다.

“올 수 없는 것을 기다리며 근거도 없이 서성거리”지만, “너도 그렇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노라고(?가로등?)”, 아름답지 않음에서 아름다움을 싹트게 만드는 것이 시인이 시의 영토를 이룬 언어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잃을 것을 잊은 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근원도 없이 뜨거워졌다 차가워지는 것들끼리 모인 언어들의 집합소라고 해야 할까. 아름다움과 폐허, 긍정과 부정 등 서로 상반된 형태 속에서, 그럼에도 우리로 하여금 긍정과 아름다움 편에 서게 만드는 힘은, 시인의 시적 완결성과 내면의 확장력 때문일 것이다.

그 영토 안의 언어들은 모두 귀와 입을 달고 있다. 그리고 귀가 있으되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너희는 “귀가 없다”고, 반면에 “나의 말은 무겁(?감정의 소환 1?)”다고 당당히 고하는 저 당당함. 하여 진정한 귀와 입을 가진 이들만이 “눈이 부시고 아름”다울 수 있음에 대하여,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음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상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기정의 언어들은 ‘낯선’ 세계에 들어와 그 세계에 관여하는 척하며, 스스로 귀와 입이 된다. “귀 없는 낙법을 상상해본 적 있니?”라고 태연자약하게 되물으며 자신들의 존재를 확고히 하기에까지 이른다. 심지어는 “사람인 척” 변명을 하는 능청스러움도 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너도 그렇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노라고”, “내게서 도망치는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필사적으로 피력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의 시를 대할 때는 조금은 삐딱하고 엉뚱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언어들에게 밉보여서는 안 된다는 조심성을 가지게 만든다는 것. 자칫 잘못했다가는 언어에 닿기도 전 삼진 아웃 나가리가 될 수도 있다. “우린 왜 자꾸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에만 / 깊은 우물을 파는지” 스스로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기정은 전혀 시적이지 않은 단어들을 시어 화(化) 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쌍방울메리야스, 개구멍, 테트리스, 권투선수, 배뇨습관, 의류수거함 등. 즉 서정성과는 거리가 먼 단어들을 끌어와 “낯설고 위험한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 세계가 하기정의 언어들이 만든 영토의 생태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구사하는 언어들은 낯설지만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기에 낯설지 않다. 역시나 끝까지 그녀의 내면에서‘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투적으로 살아져도 용도가 다양해서 / 습관적으로 내게 와서 모두 수리되었(?도구적 인간?)”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좀더 오랫동안 우리를 따라다니며 여전히 발랄하고 재치 있는, 생소하고 상큼한 질문들을 종알거리겠다는 투로 들리기도 한다. 이 세상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살 만한 가치가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여 나 또한 그렇게나마 그녀의 목소리를 두고두고 들을 수 있기를, “이봐, 거기 너! // 친절한 학년주임 선생처럼 / 상냥하게(?희망?)”그녀를, 그녀를 따르는 언어들의 영토를 간섭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밤의 귀 낮의 입술>은, “한 마음이 마음을 건너는 일(?두 손?)”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우리의 가슴에 남을 만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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