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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술 혹은 지혜
침묵의 기술 혹은 지혜
  • 김은정
  • 승인 2019.08.29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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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선임기자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수도원이 아닌 세속에 적을 둔 프랑스 출신의 ‘세속 사제’다. 신부이면서도 빼어난 설교자이자 문필가로, 또 논객으로서 당대 사회현실에 적극 참여했던 그는 3년 전쯤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책 <침묵의 기술> 저자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는 사실 1700년대를 살았던, 지금으로부터 두 세기도 더 지난 시대의 인물이다. <침묵의 기술>도 1771년에 발간됐으니 이 역시 두 세기를 훌쩍 넘어 오늘을 사는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셈이다.

소통이 화두가 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두 세기도 더 지난 옛 책이, 그것도 ‘침묵의 기술’을 앞세워 지구의 또 다른 한편에서 다시 독자들을 만나는 일은 흥미롭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의 말이 소개되어 있다. ‘말의 과잉을 앓는 오늘 우리에게 즉효의 처방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란다.

물론 이 책은 역자의 소개처럼 당대 ‘보수적 사회질서의 수호를 강력하게 주창하는 하나의 정치적 선언문으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침묵을 주제로 한 이 희귀한 고전이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끊임없이 부활하여 재해석되는 이유’ 또한 분명할 터다.

며칠 전 책장에서 <침묵의 기술>을 다시 꺼냈다.

말과 글이 난무하는 시기,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있으니 그 폐해가 어디까지 이를지 가늠할 수 없는 이즈음 문득 생각난 책이었다.

저자가 두 세기 전, 그때도 ‘침묵의 가치가 절실해진 시대’라고 규정한 것을 보니 침묵이 필요한 시대는 따로 있지 않은 모양이다.

디누아르 신부가 제안하는 ‘침묵의 기술’은 단순히 침묵하는 기술, 이를테면 단순히 ‘입을 닫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침묵이 아니라 제대로 침묵하기 위한 기술과 지혜다. 물론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깊은 숙고와 밝은 혜안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니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온갖 의혹으로 인터넷이 뜨겁다. 장관 임명에 이처럼 극렬한 대립과 갈등을 겪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국민을 대신해 후보자를 검증하는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있지만 우리가 만든 그 제도마저도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실마리를 잡았으니 가히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시절이라 할만하다.

디누아르 신부가 가른 열 가지 침묵이 있다. 그 중의 하나, ‘신중한 침묵’이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뜻으로 입을 닫는 침묵’을 이른다. 물론 신중한 침묵이 가닿는 가치가 따로 있을 터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침묵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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