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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전북문화] 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다
[반짝반짝 전북문화] 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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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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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우리나라 서원(書院)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번에 서원이 등재되면서 우리는 14곳의 세계유산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은 총 9곳인데요. 정읍 무성서원을 비롯해서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입니다. 그중에서 전북의 유일한 정읍 무성서원을 다녀왔습니다.

 

서원(書院),
조선시대 사립 고등교육기관

서원은 조선시대 사립 고등교육기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서원의 역사는 1543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과 백운동서원을 세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조정에 사액을 요청하여 1550년 명종이 소수서원 현판을 내렸습니다.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 임금으로부터 편액, 서적, 토지, 노비를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사원)이 된 것입니다. 무성서원(武城書院, 사적 제166호)은 1615년(광해군 7) 고을 유림들이 세웠으며 1696년(숙종 22) 사액을 받았습니다.

무성서원 입구에 도착해서 홍살문을 지나면 2층 구조의 고풍스러운 루(樓)가 맞이합니다.
현가루(絃歌樓)입니다. 1891년에 서원으로 들어가는 외삼문(外三門)을 대신해서 세웠습니다.
현가루는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輟)에서 나온 말로 거문고를 타고 노래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학문을 계속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놀이 자체가 학습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무성서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현가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무성서원 편액이 걸린 강당(講堂, 강의실)이 나옵니다. 현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어 1828년(순조 28) 중건되었습니다. 구조를 보면 중앙 마루 3칸은 앞뒤로 트여 있고 좌, 우로 2개의 방이 있습니다.

무성서원에서는 시간을 정해 문화관광해설사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더운 날이었지만 강당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으니까 그리 더운 줄 모르겠습니다. 해설사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무성서원에는 예와 악으로 다스리는 공자의 사상과 애민사상이 담긴 곳입니다. 서원이 있는 위치가 한적한 숲 속에 있지 않고 마을에 있는 것도 애민사상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무성서원의 특징을 현가(絃歌)라 할 수 있는데요. 해설도 그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해설사가 직접 기타 반주와 노래로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정읍사, 상춘곡, 단종비인 정순왕후의 고향답게 세 가지 이야기가 담긴 노래였습니다. 무성서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해설 체험이었습니다.

 

무성서원
돌아보기

강당에 앉아 현가루 방향을 바라보면 마당에 황토가 군데군데 뿌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문의 가운데 길을 표시한 것인데요. 제관과 제사 음식이 지나는 길을 표시한 것이랍니다. 일반인의 경우 가운데를 피하고 우측 문으로 들어가 좌측 문으로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강당에서 뒤쪽을 보면 마루 건너로 태극문양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삼문(內三門)으로 공부하는 공간과 제사를 모시는 공간의 경계를 표시합니다. 삼문을 들어가면 사우(祠宇)인 태산사(泰山祠)입니다. 신라 말 이곳 지명이 태산(泰山)이었는데요. 고운 최치원이 태산 태수로 부임해서 8년 동안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 살아있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을 세우고 태산사(泰山祠)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최치원,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7인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태산사에서 나와 강당의 동쪽으로 나오는데 멋진 수형의 나무 덩굴이 인상적입니다. 마삭줄입니다. 덩굴식물이지만 나무에 기대어 큰 나무와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6월 초 방문했을 때에는 바람개비를 닮은 하얀 꽃이 달려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삭줄을 지나 동쪽으로 난 문을 나서면 집이 한 채 있는데 기숙사 건물입니다. 일반적으로 서원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이곳에는 동재인 강수재(講修齋)만 있습니다.

강수재 앞쪽에는 비각이 두 개 놓여 있습니다. 정문술 중수의조비와 최영대 영세불망비 비각입니다. 서원 서쪽에도 두 개의 비각이 있는데 신용희 불망비와 1828년 강당을 중수한 태인 현감 서호순의 공덕비입니다.

비각 옆에는 큰 비가 하나 있습니다.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紀蹟碑)입니다. 1905년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듬해 1906년 6월 13일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의 주도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무성서원에서 호남 최초로 의병이 일어난 역사적 현장을 기억하기 위해 1992년 기적비를 세웠습니다.

기적비 앞쪽 동편에 있는 건물은 고직사(庫直舍)로 서원 관리인이 거주하는 공간입니다. 서원의 향사 시 필요한 제수품을 준비하고 서원의 살림을 관리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해설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네요.

 

무성서원
주변 볼거리

무성서원 관람을 마치고 주변 볼거리도 찾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성서원이 있는 마을 안에는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이 있습니다. 사료관 안에는 지역 정보와 선비문화 관련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비문화사료관 옆에는 연지가 있습니다. 철이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활짝 핀 백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른 시기에 온다면 좋은 볼거리가 되겠습니다.

그 옆으로는 상춘곡 둘레길이 있습니다. 이곳은 불우헌 정극인이 말년에 머무르면서 지은 상춘곡이 탄생한 지역인데요. 그것을 기념해서 둘레길 이름을 상춘곡 둘레길로 했습니다. 해설사 이야기로는 여름에는 걷기 불편한 점이 있지만 봄, 가을에 걷기 좋은 길이랍니다. 그 외에도 무성서원이 있는 칠보면에는 무성서원을 포함해서 일곱 개의 보물이 있는 곳입니다. 남은 여섯 개의 보물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칠보의 일곱 가지 보물 중의 하나인
무성서원

무성서원은 꾸밈이 없이 단출한 공간입니다. 특별히 경치가 좋은 곳에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평범한 마을 공간에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있습니다. 애민사상을 바탕으로 세운 서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상은 신라 말 이곳 태산 태수로 부임한 고운 최치원이 뿌리내려준 것으로 그 이후 700여 년이 지나 무성서원을 세웠던 당시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1,100여 년 전의 최치원의 사상을 무성서원을 통해 만났습니다. 무성서원은 칠보의 일곱 가지 보물 중의 하나인데요.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되면서 그 보물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칠보의 보물 무성서원에 담긴 애민사상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길 기대합니다. /글·사진 = 김왕중(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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