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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명무, 오롯이 걸어 온 춤 인생 70년
최선 명무, 오롯이 걸어 온 춤 인생 70년
  • 이용수
  • 승인 2019.09.08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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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최선춤 - 꽃길’ 10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전당 연지홀
1943년 여덟 살 때 시작한 시련의 가시밭길, 꽃길로 승화

최선 명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보유자인 그는 아직 청춘이다.

어느새 여든을 넘겼지만 춤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선 명무의 눈빛은 초롱초롱 맑았다. 마치 그가 처음 춤을 배우기 시작한 그때, 여덟 살 소년이 된 것처럼.

최선 명무가 걸어 온 70여 년 춤 인생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다. 10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2019 최선춤 - 꽃길’.

“오직 춤 인생, 외길만을 걸어 온 세월. 가시밭길에서 꽃길을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딛고 섰습니다. 돌이켜 보면 결코 순탄치 않은 멀고 먼 긴 세월이었습니다. 예술혼을 담아 이번 춤 공연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43년, 여덟 살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계란 두 줄을 들고 전주 전동성당 뒷골목에 있는 김미화 무용연구소로 춤을 배우러 갔다. 그렇게 최선 명무의 춤 인생은 시작됐다.

열 살이 되든 해 여름 해방을 맞았고, 이듬해 한국전쟁을 겪었다. 시련의 시간, 춤을 향한 그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남자가 무슨 춤이냐’며 주변 눈총은 따가웠고, ‘네 신세가 탈(문제)이다’며 그의 아버지도 역정을 내셨지만, 그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전주 전동성당 옆 큰 기와집인 전주국악원에서 추월기녀 선생으로부터 전라검무와 동초수건춤을 배웠다. 중학생이 된 소년은 서울로 올라가 정인방 선생에게 신로심불로, 학춤, 대감놀이, 무당춤 등을 익히며 고된 객지생활을 보냈다. 집세 낼 돈이 없어 집주인이 오는가 싶으면 문을 잠그고 숨을 죽였고,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소년은 중견무용가가 되어 전주에 왔고, 많은 제자를 가르치며 ‘춤의 숲’을 가꾸어왔다. 이제 그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백년을 바라보며 꽃길을 가려한다.

공연은 1막, 2막3장으로 구성됐다. 제1막에서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 버티며 지킨 ‘조선의 춤’을 선보인다. 제2막 3장에서는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몸은 비록 늙었으나 마음은 늙지 아니함)의 춤사위를 펼칠 예정이다.

그의 제자 장인숙 호남살풀이춤보존회장은 “스승님은 안무나 대본을 직접 챙기신다. 대충이 없으시다”며 “늘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밝혔다.

최선 명무는 “춤은 나의 운명이다”며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춤 혼을 불사르고 싶다”고 말했다.

호남살풀이춤보존회 회원 등이 출연하는 이번 무대는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마련한 공연예술 축제인 ‘2019 전라북도공연예술페스타(JBPAF)’의 일환으로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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