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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기명절지도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기명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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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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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진(1853~1920), 조선 朝鮮 1907년, 비단에 엷은 색 絹本彩色,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조석진(1853~1920), 조선 朝鮮 1907년, 비단에 엷은 색 絹本彩色,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서양에 정물화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기명절지화가 있었다. 학식 있는 문인의 품격을 나타내는 고동기古銅器와 부귀, 장수, 다남 등 길상적인 의미를 가지는 꽃과 과일, 괴석怪石 등을 함께 그려서 궁중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수요층을 가지고 활발히 제작되었다. 김용준金瑢俊(1904~1967)은 「오원일사吾園軼事」에서 “그때까지 기명과 절지는 별로 그리는 화가가 없었던 것인데, 조선 화계에 절지, 기완 등 유類를 전문으로 보급시켜 놓은 것도 장승업張承業(1843∼1897년)이 비롯하였다.”라고 하였다. 장승업은 중국의 여러 그림을 소화하여 기명절지를 하나의 유형으로 창안하여 그리기 시작한 것인데, 붓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호방하고 대담한 필치, 지그재그로 기물이 가득 찬 구도 등은 장승업만의 특징이다. 이렇게 시작한 기명절지화는 안중식과 조석진을 거치며 20세기 초 한국 화단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이 그림은 2폭 가리개 형태의 병풍으로 그보다 10살 아래인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1853~1920)의 작품으로, 오른쪽에는 국화를 소재로 한 시詩가 적혀 있고, 위에서부터 국화, 향로, 아래에 무, 호박, 배추가 그려져 있다. 왼쪽에는 고색이 만연하다는 뜻의 ‘고색임리古色淋漓’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소나무 분재, 벼루, 모란 꽃가지 등을 그렸으며, 정미년(1907년) 가평절嘉平節(12월 말)에 조석진이 그렸다는 제작시기와 그의 도장이 찍혀 있다.

각 소재의 용도와 의미가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지 않은 채 자연스럽고 보기 좋게 화면에 배열되는 것은 기명절지화 화면 구성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 그림 역시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을 늘어놓지 않아 답답하지 않고, 필력이 뛰어난 화가의 손을 통해 단정한 먹선과 은은한 채색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매우 우아한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민길홍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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