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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근대 역사여행] 익산·김제·정읍·완주, 농업 수탈의 아픔 간직한 '곡창', 문화공간으로 변신
[구석구석 근대 역사여행] 익산·김제·정읍·완주, 농업 수탈의 아픔 간직한 '곡창', 문화공간으로 변신
  • 천경석
  • 승인 2019.09.10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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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김제·정읍·완주 등 곳곳에 수탈의 흔적

‘역사 유적 여행’이나 ‘역사 교훈 여행’ 등의 관점에서 기억 산업의 영역으로 최근 새로운 테마 관광으로 부상한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과 갈등으로 논란이 되는 지금, 수탈의 현장이었던 우리 전북지역의 옛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익산을 비롯해 김제와 정읍, 완주 등은 넓고 풍요로운 곡창지대와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을 이용해 일본이 수탈의 최적지로 삼은 곳이며, 당시의 창고건물 및 일본식 가옥 등의 아픈 역사의 현장은 아직 산재해 있다. 역사를 되새겨 교훈으로 삼고 일제 강점기의 문화유산들을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 근대 농업 수탈의 전초기지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실 및 창고’
 

익산역 앞 문화예술의 거리 안쪽으로 10분 남짓 걸어가다 보면 빨간 벽돌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인 농장 지주들이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창설한 익옥수리조합의 사무소 및 창고로 사용된 건물로서 1930년에 서양식으로 지상 2층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다. 정면 중앙의 출입구와 위쪽 창호 부분은 테두리에 꽃잎무늬 형상의 인조석으로 치장해 붉은 벽돌과 대비를 이루고, 맨사드 지붕 등 독특한 당시의 건축기법들을 보여준다. 토지 개량과 수리 사업을 명분으로 설립돼 과다한 공사비와 수세를 부담 시켜 지역 농민을 몰락시키는 등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근대 농업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건물이지만 애석하게도 건축 및 기술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아 건축공학도들도 즐겨 찾는 곳이며, 지금까지도 그 견고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 농업 수탈을 말하다 ‘구 일본인 가옥’
 

춘포역에서 춘포면행정복지센터를 지나가다 보면 이국적인 느낌의 한 가옥을 만날 수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 호소카와 농장의 관리인이었던 일본인 에토가 1940년경 농장 안에 지은 2층의 나무판자를 잇대어 지은 일본식 가옥이다. 당시 이 가옥을 포함한 춘포지역의 엄청난 규모의 농지는 일본에서 건너온 호소카와 가(家)의 농지였으며, 그 규모는 당시 호남지역에서 세 번째였다고 한다. 구 일본인 가옥은 대표적인 호남지역 농업 수탈 지역이었던 춘포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팔작지붕에 일식 기와를 사용한 이 건물은 편의성 때문에 내부는 일부 수리 및 개조가 됐지만, 전체적으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지역사적, 건축적 중요한 가치가 있는 유적이다.

 

△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다 ‘구 만경교’
 

차를 타고 익산 목천동에서 김제 백구면 쪽으로 넘어가다 보면 현 만경교와 대비되는 구 만경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우리 지역의 곡물 수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1928년 2월에 준공했으며 일명 ‘목천포 다리’로 불리며 1990년까지 무려 62년간 익산과 김제를 잇는 중요한 길목으로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끊임없었던 곳이다. 익산과 김제를 넘어서 전주와 군산까지도 접근성을 높여준 이 다리가 전국 최초의 포장도로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이는 1920년부터 일제에 의해 실시된 산미증식계획이 본격화됨에 따라 우리 지역에 나는 수많은 쌀과 농산물들을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군산항까지 나르던 비운의 다리이기도 하다. 1990년 구 만경교 옆 새로운 만경교가 놓이면서 그 쓰임은 동네 주민들에게만 가끔 이용돼 오다가 2015년 6월 세월의 흔적을 속이지 못하고, 노후와 안전사고의 위험으로 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전면 철거를 하지는 않고 다리 양쪽 끝부분을 새롭게 정비해 만경교의 기억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 어두운 역사가 예술촌으로 ‘삼례문화예술촌’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은 일제강점기에 만경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제가 수탈하기 위해 임시로 보관하던 양곡창고를 지난 2013년 리모델링한 곳이다. 삼례 양곡창고는 지금까지도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고, 내부 또한 당시 쌀의 신선도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이 잘 보존돼 있다. 1970년대까지 양곡창고로 활용됐으나 이후 삼례역이 전라선 복선화 사업으로 이동되고 도심 공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양곡창고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이에 완주군은 이 창고를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예술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미디어아트미술관을 비롯한 문화 카페, 책공방, 북아트센터, 책 박물관 등으로 재탄생 시켜 복합 문화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 생활문화센터로 탈바꿈 ‘신태인 구 도정공장 창고’

‘정읍 신태인 구 도정공장 창고’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건립된 근대 건축물로 일본인 대지주가 수확한 벼의 상품성을 높여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세운 도정 공장의 창고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지은 건물로 지붕은 골함석으로 덮었고, 내부는 목조로 구성했다. 이 창고는 정읍 일대에서 생산된 쌀을 익산을 거쳐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했던 일제의 전북지방 농업 수탈 현장을 보여주는 시설물이다. 현재는 정읍시 생활문화센터로 활용되며 지난 2017년 개관한 이래 지역민을 위한 꾸준한 생활문화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일제 수탈 소설 속 배경이 현실로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
 

조정래 소설 ‘아리랑’의 배경인 김제 만경, 소설 속 장소들을 재현해둔 아리랑문학마을. 이야기가 시작되는 김제시 죽산면 옛 내촌·외리 마을 일대에 터를 잡아 우리나라 대표 곡창지대의 살아있는 문학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아리랑 문학마을은 홍보관, 하얼빈역, 내촌. 외리 마을, 근대 수탈 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홍보관 1·2층에는 소설의 주요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민초들의 애환과 투쟁, 처절한 삶과 혼을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꾸며졌으며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수탈, 아픔, 이민과 항쟁을 소설속의 주인공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초가동 마을을 연출했다. 민초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던 주재소와 면사무소 등 전위기관을 표현한 4개 동이 재현돼 있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조국 독립을 위한 끝없는 항쟁사를 표현한 하얼빈역사 등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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