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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의식과 문화적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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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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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전북 서화계를 이끌다- 석정 이정직 특별전'에 부쳐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의 서화 전시회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다. 석정 이정직 선생은 근대계몽기에 전북이 낳은 시인이자 문장가였고 예술가이자 실학자였다. 그의 학문과 예술은 시와 문장, 글씨와 그림, 문예이론, 성리학과 양명학, 천문과 역학 등의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 서양 철학을 처음으로 도입하였고, 조선 후기의 당송고문인 한구정맥(韓歐正脈)을 호남에 정착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석정은 학문 이외에도 예술 분야인 서화에서 일가를 이뤘다. 그는 특별한 스승도 없이 오랜 세월에 걸쳐 스스로의 부단한 학습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한국 예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흔히들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에서 두루 뛰어난 예술가를 ‘시서화 삼절(詩書畵三絶)’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예술사에서 시서화를 두루 갖춘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굳이 꼽는다면 조선후기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9~1856) 정도이다. 그런데 근대계몽기에 호남에도 시서화 삼절을 갖춘 인물이 있었다. 그분이 바로 석정 선생이었다. 석정은 다른 인사들과 달리, 전북이라는 지방예단에서 일궈냈다.

석정의 학문과 예술은 교육을 통해 이곳 전북의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을 거치면서 석정의 학문과 예술은 오늘날 전북문화의 자양분이 되었다. 석정의 교학 성과를 짚어보건대, 그의 문하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예로써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은 주로 도학과 글씨에서, 상곡(象谷) 정노식(鄭魯湜)은 판소리 연구와 사상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오당(吾堂) 강동희(姜東曦)는 행정가로 성장하였다. 서화계에서는 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 설송(雪松) 최규상(崔圭祥), 유하(柳下) 유영완(柳永完) 등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번 국립전주박물관 전시회에서는 벽하 조주승과 유하 유영완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 전북인은 태어나 고향에 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이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부모 형제나 자신이 태어난 산천, 그리고 성장하면서 먹고 마시며 보고들은 고향의 향토 문화를 잊지 못한다. 이것은 생득적이자 원초적이다. 반면에 고향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체험과 학습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내면화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생 동안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번 국립전주박물관의 석정 이정직의 전시회가 무척 반갑다. 석정이야말로 우리 전북 문화의 유산이자 모두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석정 이정직 서화 전시회는 전시로 그치지 않는다.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지역민이나 학생들과 다양한 콘텐츠로 소통하면서 전시회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석정 이정직의 예술세계가 전북 사회에 굳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석정 이정직은 이곳 지역민이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전북 문화의 자부심으로 다가올 것이다.

/구사회 선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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