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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안중근 장군'
독립군 '안중근 장군'
  • 김영곤
  • 승인 2019.09.16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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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설 무렵. 하얼빈 역에서 의장대를 사열하던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다.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열혈남아’ 안중근장군이 총구를 겨눈 것이다. 그는 체포된 뒤 연행되는 순간에도 “대한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익히 알려진 안중근의거에 관한 얘기다. 그런데 ‘안중근장군’이란 칭호가 왠지 생소하고 낯설다. 지금까지 무심코 사용한 ‘안중근의사’ 표현에 익숙해진 탓일까.

‘안중근장군’으로 불러야 한다고 2000년대 중반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이 전개됐다. 의거당시 그는 ‘대한의군참모중장’ 직위의 군인 신분이었다. ‘안중근의거’가 독립을 위한, 독립군에 의한 조직적인 거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스스로도 독립군장군으로서 독립전쟁 중에 적장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마찬가지로 법정에서도 ‘대한의군참모중장’ 이라고 신분을 밝히며 일본재판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18대 국회의원 152명이 장군승격에 자발적으로 서명 했으며, 2014년부터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안중근장군’ 이라고 불렀다.

‘안중근의거’는 국운이 기울어가던 그때 국내외 애국지사에게 ‘살아있는 민족혼’을 일깨워준 쾌거였다. 그리고 독립운동 서막을 예고한 거사였다. 이런 기류를 눈치챈 일본은 독립군이 아닌 한 개인(테러리스트)의 복수에 의한 사건으로 서둘러 마무리 한 것이다. 이후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당연한 것처럼 사용한 ‘안중근의사’ 라는 표현도 틀린 말은 아니다.

숭고한 희생으로 나라를 지킨  ‘열사’ ‘지사’처럼, ‘의사’도 보훈등급의 하나다. 단지 무력(武力)을 사용했다는 의미가, 일본이 의도한 테러리스트와 오버랩 되면서 찜찜할 뿐이다. 흔히 사용하는 칭호라도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 전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장군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전주에도 있다. 한국은행 맞은편 풍년제과 건물에 있는 ‘안중근장군 기념관’ 이 그곳이다. 강동오대표가 2008년 ‘안중근정신’에 매료돼 수십 차례 중국을 오가며 수집한 갖가지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2m40Cm 높이의 장군 입상이 있고, 보물로 지정된 유묵(붓글씨)과 당시 뤼순감옥을 재현 감옥체험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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