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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대신 ‘존중하는’
‘존경하는’ 대신 ‘존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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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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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 소설가
김종광 소설가

진정서를 써본 일이 있다. 지인이 갇혀 있기에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부양하는 가장임을 긍휼히 여겨 집행유예로 봐주십사 애걸복걸하는 내용이었다. 반성문보다 더 쓰기 힘든 글이 남을 위해 쓰는 진정서임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첫 문장 때문에 괴로웠다. 진정서를 어떻게 쓰는 건지 대략 알아보았는데, 하나 같이 첫 문장이 ‘존경하는 판사님’이었다. 정말 존경하는 부모와 스승께도 왠지 쑥스럽고 오해 받을까봐 써보지 못한 말을, 생면부지의 판사에게 써야한단 말인가?

판사가 진정서를 틀림없이 읽어주고, 진정서가 판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인다고 치자. 누구나 쓰듯 ‘존경하는 판사님’이라고 시작하면, 판사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첫 문장을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존경하는’을 쓰지 않으면 판사의 감정이 상할지 모른다. 진짜 존경하지 않는 것으로 오독할 수도 있다. 불쾌할 수도 있다. “남들 다 쓰는 ‘존경하는’ 말 한 마디를 안 붙였네, 성의가 없어!”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친애하는’을 쓰거나 ‘대쪽 같으신’ ‘사랑해 마지않는’, ‘똑바로 판결해주시리라 믿는’, ‘법의 수호자이신’,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하늘님 같으신’ 등과 같이, 남다르게 써도 좋은 소리 못 들을 테다. “뭐야, 판사한테 장난쳐?”

판사는 실제로 존경할 만한 분일 테다. 공부로 따진다면 내가 한없이 우러러봐야한다.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할 때 절로 존경심이 든다. 경제적인 면을 따지면 나 같이 모자란 사람은 공경을 해도 모자란다.

불구하고 ‘존경하는’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쓰기 싫었을까. 아무리 지인을 구하고자 하는 글이지만, 아무리 의례적인 표현이라지만,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칭이 아니었기에, 그런 판에 박힌, 진심이 담기지 않은 관용어를 쓰는 것이 저어됐을 테다.

‘존경하는’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발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토론인지, 회의인지, 질의인지, 취조인지, 말싸움인지 잘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의 언변 덕분에 곧잘 놀라고 자주 웃는다. 저렇게 재미난 분들이 계신데, 소설이 읽힐 리가 없다. 도무지 적응 안 되는 말이 ‘존경하는’이다. 주로 진행자인 위원장이 쓰는 말이다. 질의자가 여당의원이든 야당의원이든 꼭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대체 왜? 혹시 반어법일까? 그렇게 보기엔 칭하는 이나 듣는 이나 너무 자연스러운 얼굴이다. 텔레비전 보는 국민을 세뇌시키려는 것일까? 국회의원님을 부를 때는 앞에 ‘존경하는’을 붙여야 된다고. 국회의원끼리라도 존경해주자는 것일까? 혹시 진심인 걸까? 여야를 떠나서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성별을 떠나서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준 사이더라도, 국회의원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동류의식의 표현?

‘존경하는 의원님’도 ‘존경하는 판사님’ 못지않게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된 관용어일 테다. 내가 추측한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의도가 담겨있다기보다는 위원장쯤 되어 회의진행을 할 때 으레 쓰는 단순관형어일 테다. 품위 없는 언어를 사용하며 다른 당 의원을 자격이 없다고 매도하는 이들도 위원장이 되면 ‘존경하는 의원님’을 입에 달게 될 테다.

어쩌면 ‘존경하는’은 법원과 국회뿐만 아니라, 판사 못지않은, 국회의원 못지않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는 말일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존경하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존경하는 공화국’일지도.

‘존경하는’, 그만 하자. 국회의원을 ‘존경하는(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는)’ 국민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존경 받으면 안 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한테 칭찬 받아야 할 머슴이니까. 국민의 충복끼리 ‘존경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진짜 언제쯤 존경하고픈 국회의원을 볼 수 있을까.) 정 무슨 말을 붙이고 싶다면 ‘존중하는’ 어떤가. 사람끼리 존중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못하니 ‘존중하는’이라는 말이라도 사용하라는 것이다.

/김종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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