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10-19 23:28 (토)
피의사실 공표, 계속 지켜볼 것인가
피의사실 공표, 계속 지켜볼 것인가
  • 기고
  • 승인 2019.09.22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낙준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
최낙준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

소위 ‘논두렁 시계 사건’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수사 중 사망한 것을 계기로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가 YG엔터테인먼트와 조국 법무부장관의 일가를 대상으로 한 수사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러한 피의사실의 공표는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의 수사상 편의를 위한 피의사실의 공표와 언론의 여과 없는 보도로 재판절차에서의 진실 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피의자는 유죄로 인정되어 헌법상 피의자에게 인정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깨어지고, 비록 재판절차에서 무죄가 판명되어도 피의자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인격권의 침해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 형법 제126조에서는 피의사실 공표에 관해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자의 인권보호 등을 위해 1953년 제정된 이래 개정 없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로 처벌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주체와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처벌하는 주체가 동일하고, 언론은 처벌대상도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또한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거치면서 논란이 돼 2010년 법무부 훈령으로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만들어 기소 전 피의사실을 일체 공개하지 않고 예외적으로 중대한 오보·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피의사실을 공표하도록 하였으나, 이는 피의사실 공표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형법과 모순될 뿐만 아니라 위반자에 대한 처벌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결국, 피의사실 공표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연방법무부에서 마련한 ‘연방검사업무지침’의 ‘대언론관계’장에서 수사기관의 브리핑 원칙을 명확히 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연방검사업무지침’은 수사기관 브리핑 한계와 시점, 그리고 주의사항 등을 상세히 규정하여, 피의자의 범죄전력, 진술, 유무죄에 관한 의견 등의 언론공개도 금지된다. 또한 기소 시 발표하는 보도자료에 ‘기소 범죄사실은 단순한 혐의에 불과하여 재판확정 시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점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영국은 언론보도가 해당 사건의 공정한 수행을 저해하거나 편견을 주게 될 실질적인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에 ‘법정모욕법’에 근거해 처벌하도록 하여, 언론보도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형법제정에 영향을 준 일본의 형법에서는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로 인해 피의자의 명예가 훼손된 경우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면서, 이 경우에도 진실한 사실로 공익을 위한 목적이 있는 경우나 공무원 또는 공직선거에 의한 공무원후보자에 관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벌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피의사실 공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로 인한 피해회복을 규정하여 국민의 알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 및 피의자의 인격권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 또한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하여, 국민의 알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 및 피의자의 인격권의 조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욱이 YG엔터테인먼트와 조국 법무부장관 일가에 대한 사건을 계기로 대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사법 및 법무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 피의사실 공표의 규제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닐 수 없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규제는 국민적 합의가 꼭 필요한 중대 사안이니, 더욱 그렇다.

이에 우리도 과거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고, 외국입법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민적 합의를 통해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악몽이 반복되지 않도록 형법에서 정한 피의사실공표죄를 개정하여 ‘중대한 공익상의 이유’ 등의 예외를 인정하면서도, 별도의 법률제정을 통해 실질적이고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헌법에서 인정하는 국민의 알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 및 피의자의 인격권 중 무엇이 우선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최낙준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