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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죽음과 지역병원
장모님의 죽음과 지역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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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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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지난주 절에서 장모님의 49재를 지냈다. 극락왕생을 빌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길 기원했다. 스님의 염불에 맞춰 두 시간 넘게 천수경 등을 따라 하고, 법문(法文)을 외웠다. 장모님이 평소 입던 옷가지도 태웠다. 하늘 높이 훨훨 타올라가는 불길을 보며 천상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길 마음 속 깊이 빌었다.

올해 84세인 장모님은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셨다. 대학병원에서 심장혈관 스텐트시술 중 심정지(心停止)가 와서 돌아가신 것이다. 시술 받으러 들어간 지 3시간이 못돼 그렇게 되었다. 기가 막히고 허망했다. 발을 허공에 디딘 것처럼 한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장모님은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분이셨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키워주셨다. 큰 아이가 유치원 들어갈 때 일이다. 당시 유치원은 경쟁률이 높아 원생을 선착순으로 뽑았다. 2월이던가, 꽤 춥던 날 새벽부터 10시간 넘게 밖에서 줄을 서 계셨다. 손자들 일이라면 지극 정성이었다.

당초 장모님은 수술이나 시술은 생각지도 않았다. 얼마 전부터 숨이 차긴 했으나 감기정도로 여겼다. 유일한 혈육인 딸이 병원에 가자고 하니 “익산에서 치료 받아도 되는데 왜 전주까지 가느냐”고 못마땅해 하셨다. 의료진은 “혈관이 좁아져 있고 판막도 좋지 않아 이대로 두면 1년밖에 못 사신다”며 수술보다 안전한 시술을 권했다. “시술을 하고 나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세 번째 혈관을 뚫다 혈액 부스러기가 혈관을 막아버린 것이다. 중환자실로 옮긴지 30분이 안 돼 또다시 심정지가 왔고,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셨다.

전후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쉬움이 너무 컸다. 우선 환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설사 등으로 체력이 최악인 상태에서 혈관 3개를 한꺼번에 시술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또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무심했다. 심장 쇼크 후 보인 의료진의 태도는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아마 그들에게 환자의 죽음은 늘 대하는 일상사여서 너무 익숙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환자는 본인이나 가족에게 전 세계요 우주다. 환자의 죽음과 함께 가족의 상당부분도 함께 죽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진이 일부러 사고를 냈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장모님의 죽음을 보며 지역에 좋은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주변에서 병이 나면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때마다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 병원이나 오진이 있고 의료사고가 있게 마련인데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지방에 산다는 것이 우수한 보건의료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걸 의미해선 안 된다. 지금 전주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Community Care)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돌봄을 받다 생은 마치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양질의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믿을 만한 의료시설이 없다면 출발부터 도로아미타불이다.

8월의 무더위에 휴일까지 겹쳤는데도 많은 분들이 위로해 주셨다. 그분들 중 “고인(故人)이 딸과 사위를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가신 것 같다”는 말에 목이 더 멘다. 중국 시인 두보는 “관을 덮고서 일이 정해진다.”고 했다. 가신 뒤 고마움의 그림자가 더 긴듯하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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