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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 문학의 메카, 전북] ⑩ 흥부전, 판소리적 골계 통해 빈익빈부익부 사회 모순 풍자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 문학의 메카, 전북] ⑩ 흥부전, 판소리적 골계 통해 빈익빈부익부 사회 모순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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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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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놀부는 춘보전설, 박첨지전설을 모태로 한 실존인물
흥부 출생지는 남원 인월면 성산리, 발복지는 아영면 성리
현실을 토대로 환상·기괴를 융합한, 민중의 역동적 서사체 구현
삭임 미학의 흥부전의 꿈,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세계 지향
흥부 묘(남원시 아영면 성리 소재 박춘보 묘).
흥부 묘(남원시 아영면 성리 소재 박춘보 묘).

“내 가난 들어 보오. 내 가난 남과 달라 이 대째 내려오는 광주산 사발 하나 선반에 얹은 지가 팔 년이로되, 여러 날 내려오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눈물만 뚝뚝 짓고, 부엌의 노랑 쥐가 밥알을 주우려고 다니다가 다리에 가래톳이 서서 종기 터뜨리고 드러누운 지가 석 달 되었소.”

흥부가 식솔들을 부양하기 힘들어 다소 의기 좋게 병영(兵營)에 죄인 대신 매를 맞기 위해 매품 팔러 갔는데, 매품 팔러 온 사람들이 하도 많아 흥부의 제안으로 서로 가난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가난경쟁을 하게 된다. 위와 같은 내용 등을 듣고는 흥부는 매품팔이도 포기하고 낙담하여 돌아오게 된다. <흥부전>은 환상과 기괴가 넘치고, 과장과 해학, 풍자 등으로 어떤 고전소설보다 활기가 넘치는 작품이지만, 분명한 것은 당대 하층민의 실상을 기초로 하여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흥부전 역시 판소리계 소설로 판소리 흥보가가 소설 흥부전으로 정착되었다. 먼저 주인공의 이름을 거론하면, 사실 거의 모든 판소리에서 흥보, 놀보로 불렸으나, 1860년대 대량으로 발간된 경판본에서 흥부, 놀부로 이름을 붙이고, 광복 이후 교과서에 흥부, 놀부로 나오면서 이후 이름이 흥부, 놀부로 거의 고정되었다. 흥부의 성(姓)은 신재효의 ‘박타령’ 이후 판소리창본들에서 박(朴)씨로 나오고 있으나, 임(林)씨 설, 연(延)씨 설도 있고,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다.

흥부전의 근원 설화로 ‘박 타는 처녀’와 ‘방이설화’를 들 수 있고, ‘동물보은담’, ‘선악형제담’, ‘무한재보담’ 등이 흥부전의 화소로 등장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반면에 김창진은 꼭 이들 설화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서 흥부전이 지니고 있는 ‘현실성’에 주목한다. 그는 이 작품이 실제적인 사건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추정하고 제반 상황을 검토하고 고증하였다.

흥부전은 37종의 모든 이본에서 지리적 배경을 거의 한 곳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런 점에 비추어 이 이야기가 실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것은 남원 광한루와 같은 어떤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춘향전이나, 지역성과 무관하게 전해오는 설화 등과는 경우가 다른 사례라 할 것이다.

흥부마을에는 흥부전의 모태가 되는 ‘박첨지 전설’과 ‘춘보 전설’이 내려온다. ‘박첨지 전설’에 의하면, 운봉과 함양 쪽에 땅을 가진 지주 박첨지가 살았는데, 민란이 일어나 박첨지와 그의 식구들이 몰살을 당했고, 한 나그네가 찾아와서 그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한다. 이 이야기를 분석한 결과 박첨지와 나그네는 놀부와 흥부의 원형적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 민란이 어떤 민란인지 밝혀내지는 못했으나 흥부전은 이 ‘박첨지 전설’을 소재로 했을 것으로 추정된 것이다.

1940년까지 흥부의 제사를 지내왔으나 일제가 식량 부족을 이유로 금지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여러 정황을 연구한 결과 흥부와 놀부는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재효의 ‘박타령’에 나오는 ‘복덕촌’(지금의 복성리)을 여러 문헌 등을 통해 고증하고, 이런 사실 등을 종합한 결과 흥부의 출생지는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이며, 흥부가 유랑하다 돌아온 곳이 복덕촌이고, 이후 이웃 마을로 이사하여 정착한 곳 즉 발복지(發福地)는 아영면 성리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박춘보라는 이름으로 묘소도 남아 있으며, 1992년 이후 해마다 제사도 지내오고 있다. 그러나 실존인물로서의 흥부와 놀부가 형제였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문헌상 ‘흥보가’를 가장 앞서 부른 명창은 권삼득(1771-1841)이다. 권삼득은 남원군 주천면에 와서 소리를 완성하고 명창이 되었는데, 주천면은 흥부의 고향과 발복 마을에 인접한 곳이다. 권삼득은 이곳에서 박첨지 전설과 춘보 전설을 분명 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흥보가’의 발생 시기가 18세기로 추정되고 있는바, 권삼득이 두 전설을 바탕으로 ‘흥보가’를 짰을 가능성도 있으며, ‘흥보가’가 그 이전에 만들어졌다면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더욱 실감나게 다듬고 고쳐서 오늘과 같은 ‘흥보가’의 형태로 완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남원 흥부제 모습.
남원 흥부제 모습.

‘흥보가’는 실제의 사건을 기초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였다. 그러나 지주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민중이 지주를 파멸시킨 사건을 18세기 당대에 현실적인 구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놀부박’이라는 상징적인 형태의 골계와 풍자, 또는 기괴한 이야기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론된다. 흥부전의 주제는 권선징악과 형제간의 우애 등으로 말해질 수 있으나, 판소리 흥보가와 소설 흥부전 모두 그 이면에는 민중의 입장에서 조선 후기의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사회상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다.

흥부전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층민의 처참한 상황을 담아내고 있고, 민중의 입장에서 당대의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제가 무리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판소리라는 예술장르로서의 오락적 기능과 ‘제비박’이라는 상상적 서사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의 꿈을 대변하는 서술자의 상상과 환상 그리고 현실성을 뛰어넘는 기괴를 통하여 흥부전은 당대의 피폐한 민중의 현실을 신랄하게 드러내면서 설움을 달랠 수 있었고, 동시에 익살과 풍자를 통해 작품의 흥미와 긴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등 대중적으로 많이 읽혀지는 판소리계 소설들에서 찾아지는 공통점은 당대 민중들의 한을 담고 있다는 사실과 익살과 해학으로 빚어지는 골계미로써 작품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면서 이끌어나간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들 소설에서는 한결같이 비현실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이러한 비현실성은 판소리계 소설 특유의 골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었고, 동시에 지쳐 있는 민중들에게 오뚝이처럼 일어서게 하는 희망을 심어준다. 여기에서 원한과 탄식의 부정적 세계가 삭임의 과정을 거쳐 원(願)과 정한(情恨)의 긍정적 세계로 승화되는 한국적 한(恨)의 양상을 만나게 된다.

놀부가 없는 흥부전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흥부전이 개연성 있게 느껴지는 것은 ‘놀부박’이라는 장치 속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실의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당대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흥부전은 착한 사람이 가난하게 살고, 악한 사람이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제비박’이라는 은유적 장치로 통렬하게 풍자함으로써 민중의 아픔을 달래고 위로하고 다시 내일을 꿈꾸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아울러 흥부전은 인간의 내면에 담긴 ‘욕망’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윤리 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없이 이기적 욕심 끝에 패망해가는 놀부를 바라보며 독자는 환상적 통쾌감을 누리게 된다. 반면 착하게 살아온 흥부 가족이지만, 분에 넘치는 물질적 부유함에 정신없이 좋아라 하는 모습과 흥부에게 찾아온 양귀비의 등장 등 ‘흥부박’ 이후 벌어지는 흥부 가족의 욕망 양상은 흥부 가족 역시 희화적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 흥부전의 서술자는 단일한 시선과 절대적 가치 기준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으며, 인간의 욕망이라는 본질적 요소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욕망의 흐름에 따라 장면은 완성되고 이어지며, 독자들은 끊임없이 이야기 속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견주어보게 된다. 그 결과 독자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들은 격식과 억압을 넘어서서 허구를 매개로 분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과 미완결성이 곧 흥부전 서술의 큰 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런 힘은 고정된 작품 구조가 아닌, 민중과 더불어 호흡을 함께하는 판소리계 소설이기에 얻어지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후기 판소리 흥보가 또는 소설 흥부전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환상과 기괴는 축소되고, 현실 논리와 윤리적 측면이 강화된다. 패망한 놀부도 버려두지 않고 흥부를 내세워 포용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민중의식은 특정 상태에 머물지 않으며, 제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모습을 바꾸는 비정형의 동적 존재를 지향한다. 결국 흥부전은 ‘삭임’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물질에 지배되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대동세계를 지향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원 전북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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