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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전북여행] 순창 향가터널 "순창에서 즐기는 추억여행"
[뚜벅뚜벅 전북여행] 순창 향가터널 "순창에서 즐기는 추억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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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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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사진
터널 사진

역사는 흔적을 남기고 흘러갑니다. 아니 우리는 남겨진 흔적에서 역사를 읽지요. 그래서 우리는 유물을 찾고 유물에서 흔적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흔적에서 대대로 내려온 우리의 얼굴을 봅니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참된 우리의 모습은 역사 속에서 감춰져 있고, 역사 안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며 숨 쉬고 있지요. 그것이 기쁨이고 영광이며 자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슬픔이요 굴욕이며 아픔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남겨진 유물이 정신적인 것이든 가시적 문물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서 우리의 참 얼굴을 보고 오늘의 의미를 찾아가며, 내일의 바람직한 모습들을 탐색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사 그대로의
공간

향가마을 표지석
향가마을 표지석

순창에 향가터널이 있습니다. 향가라니....... . 그것도 향가 터널이라고? ‘향가’는 신라의 노래가 아닌가요. 신라 시대의 노래가 정신적 유물로 이 고장에 남아 있다는 말인지, 나그네는 잠시나마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알아보니 향가가 아닌 향가여서 궁금증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지만, 그 이름에서 풍겨오는 호기심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香,향기롭고 佳,아름다운 터널’이라는 해석이 늘 머릿속에 남아서 윙윙거렸습니다.

 

 

향가유원지
(풍산면 대가리)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의 향가마을에 있는 자연발생유원지이다. 섬진강의 중간지점, 강물이 산자락을 휘감고 도는 곳이며 편히 쉴 수 있는 백사장이 일품이다. 섬진강의 강물을 향기로운 물(香水)이라 하고, 근처의 옥출산(玉出山, 276m)을 가산(佳山) 즉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향가(香佳)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출처, 순창군청 홈피)

나그네가 향가터널을 찾을 때는 아직은 가을이 오기 전이었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바짝 긴장하던 때였지요. 세상에 수출을 규제하겠다니? 수입을 규제하겠다는 말은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수출 규제라는 말은 국가의 안보와 관련되지 않고서는 좀처럼 행하지 않는 조치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 향가터널이 일제의 착취 현장이자, 살아 있는 역사의 유산이라는 것에 나그네는 한참을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에 감춰진 슬픔의 역사가 모순된 불균형으로 나그네의 가슴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향가터널에 가기 전, 도로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섬진강 오토 캠핑장. 슬픔과 아픔을 딛고 일어선 우리의 오늘이 그려졌습니다. 사실 오토 캠핑장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요. 자기의 승용차로 가서 쉴 수 있는 곳, 가족끼리, 친지끼리 가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현대의 문화가 지어낸 말이기 때문입니다.

향가터널 입구
향가터널 입구

향가터널이 보입니다. 나그네처럼 차를 가지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궁금증을 머리에 이고 터널 입구를 서성거립니다. 그리고 입구에 조성된 조각물을 봅니다. 터널을 뚫기 위해 동원된 이곳 농민들의 고통스러운 노역의 모습과 이를 감독하는 일제 순사의 표독한 표정이 대조되어 형상화된 조형물입니다. 곡괭이로 굴을 파는 당시 이 지역 농민과 총이나 곤봉을 들고 채찍질하는 일본 관리의 표정이 사실적입니다.

터널로 들어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아직은 따가운 햇볕인 낮 기운에, 흐르던 등의 땀을 씻어줍니다. 냉기가 밖 기온보다 5℃는 낮아진 것 같았습니다.

향가터널은 일제 강점기 말 순창과 남원, 담양 지역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일본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목포와 나주, 송정, 담양, 순창 등 호남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순천을 거쳐 여수로 실어내려고 철도를 만들었는데 해방이 되자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단단한 암벽을 뚫고 만든 터널은 길이 384m, 너비는 차 한 대가 너끈히 지나갈 정도로 넓었습니다.

천장에는 하얀 비둘기 모형이 매달려 있습니다. 수탈과 억압의 현장에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보다니! 야릇한 기분 속에서 우리의 심성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그러하기에 아픈 역사의 현장에 평화를 심었나 봅니다.

그런데도 슬펐습니다. 터널 벽에 조성된 그림 때문입니다. 타일로 당시의 공사 현장과 미곡 수탈 과정을 재현해놓았던 것입니다. 힘겹게 돌을 짊어지고 가는 농민의 모습에 작금의 한일 상황이 맞물려 화가 스멀스멀 치밀어 오릅니다. 이러한 착취 끝에 오늘의 일본이 있음에도 ‘수출규제’로 우리의 도약을 저지하려는 일본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몸뿐만 아니라 마음 까지 소름이 돋았습니다.

 

향가터널에서의
추억

향가터널에는 200여 점의 그림 타일이 있습니다. 설치된 그림 타일은 향가오토캠핑장에서 열린 ‘향가 가을 페스티벌’에서 진행된 방문객들의 소망 그리기 행사와 제12회 순창장류축제 기간 중 장류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를 통해 그린 작품을 타일 형식으로 만들어 설치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터널은 이제 자전거 도로가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형상화된 조각을 비롯한 각종 사진도 게시되어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시원합니다. 힘이 솟습니다. 나그네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픔의 현장에서 새로운 희망을 봅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일어선 자의 굳센 의지를 봅니다. 아무리 현실이 괴롭더라도 이를 낙관적으로 극복한 자에게는 불행은 없다는 사실을 믿기로 했습니다. 아픔을 관광지로 만들 줄 아는 여유와 지혜를 봅니다. 너른 마음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본래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이 그러합니다.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짐차(?)를 타고 한 노인이 나그네를 스쳐 갑니다. 자전거를 탄 젊은이가 씽씽 지나가고 있습니다. 노소가 함께 하는 오늘의 향가터널은 과거를 안고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원한 터널입니다.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 이 찬란한 풍광이라니! 아름다운 우리나라입니다. 터널에 이어 일제때 세운 철로 교각에 새롭게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이 상쾌한 풍광과 함께 신선한 감각을 선사해줍니다. 아픔은 기쁨의 또 다른 동의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 인증센터가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된 인증센터에는 자전거길 안내도와 함께 인증 스탬프가 있습니다.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은 총 149km로, 섬진강댐에서 시작해, 장군목과 향가유원지, 횡탄정, 사성암, 남도대교를 지나 배알도 수변공원에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달리고 싶은 꿈같은 길이 아닐까요?

일제 수탈의 잔재는 이제 유원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일제가 준 고통의 현장은 이곳의 주민들 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함께 주고 있습니다. 산과 강이 어울리는, 그야말로 香佳입니다.

나그네는 터널을 되돌아오면서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이 치욕스러운 역사, 아픔의 역사, 서러움의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어불성설의 이유를 대며 수출을 안 하겠다는 일본의 속셈은 무엇인가. 일제의 유산인 불행한 역사를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는 우리를 주저앉히겠다는 오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일제 강점기에 갖고 있었던 우리에 대한 일본의 우월감이자 멸시의 태도가 아닌가. 구한말에 당했던 그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와 함께,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나 자신부터, 나의 위치에서,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정말 평범하면서도 비장한, 그러나 아주 당연한 다짐을 합니다.

나그네는 이제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향가터널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습니다.
소나무가 곧게 서 있고 무궁화가 고결하게 피어 있군요.

향가를 다시 떠올립니다. 신라시대 불렸던 민요가 4구체 향가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풍요. 풍요는 노동요라고 하니 어쩌면 향가터널을 뚫으면서 노역한 일제 강점기 우리 농민들이 불렀던 노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

원문: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다, 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양주동 해독)

/글·사진 = 이희규(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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