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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대나무 그림 속에서 선비 정신을 읽다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대나무 그림 속에서 선비 정신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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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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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직李定稷(1841-1910), 대한제국 1909년, 종이에 먹, 각 면 160.0×32.0cm,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이정직李定稷(1841-1910), 대한제국 1909년, 종이에 먹, 각 면 160.0×32.0cm,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6폭에 걸쳐 대나무를 그리고, 마지막 폭 끝에 1909년 정월 초사흘에 호서실好書室에서 그렸다고 적었다. 1909년은 69세 이정직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이고, 호서실은 책을 좋아하는 방이라는 뜻의 서재 이름이다.

6폭의 병풍은 3개의 종이를 이어 160.0×32.0cm의 화면을 만들고 그 안에 대나무를 담았다. 병풍 상태로 보면 2미터를 넘는 대작大作이다. 화폭 속 대나무는 비가 온 뒤 대나무, 우죽雨竹에서부터 새로 돋아나는 신죽新竹에 이르기까지 모양도 자세도 다양하다. 댓잎은 위로 뻗기도 하고, 아래로 쳐지기도 하며, 하나하나에 날카로운 필력의 내공이 담겨져 있다. 또한 농묵으로 그린 댓잎과 담묵의 댓잎이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살려주고 있다. 자연 속 실제 대나무는 보통 숲을 이루는데 그림 속 대나무는 한두 그루씩 쓸쓸하게 그려진다. 댓잎도 소략하다. 숲을 이룰 때보다 한두 그루씩 홀로 서 있는 모습은, 묵향墨香을 머금고 멋스러운 느낌을 준다. 여백에는 중국 당시唐詩 가운데 대나무를 노래한 시를 골라 적었는데, 그림의 전체 윤곽을 따라가며 글의 시작 위치를 조절함으로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끌어냈다.

이정직은 「종죽기種竹記」에서 국화, 파초와 함께 대나무를 직접 재배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효용성을 논한 바 있다. 6폭 병풍에서 대나무 그림 옆에 곁들인 중국 시를 보면, 어울리는 시를 잘 찾아 매칭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가 직접 대나무를 노래한 시 또한 문집에 많이 전하고 있어, 이정직이 그만큼 시문학에 조예가 깊었음도 알 수 있다.

이정직에게 글을 받으러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고, 제자가 되고자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는 세상에 이름이 나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시대를 관통하는 힘을 고법古法에서 발견하고 철저한 학습과 끊임없는 탐구로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갔다. 6폭의 대나무 그림에서는 그러한 꼿꼿하고 철저한 선비 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민길홍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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