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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미제살인사건을 추적한다] ① '공권력이 살해당했다' 전주 백 경사 피살사건
[전북 미제살인사건을 추적한다] ① '공권력이 살해당했다' 전주 백 경사 피살사건
  • 강인
  • 승인 2019.11.11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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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20일 새벽 금암2파출소 근무중 살해 당해
목·가슴 흉기에 찔려 사망, 백 경사 소지 권총 사라져
살해 용의자 혐의 인정 후 자백 번복, 증거 없어 풀려나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혔다. 경찰은 DNA 감식기법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춘재를 찾아냈다. 이후 상황은 일사천리였다. 피의자 이춘재가 입을 열며 숨겨졌던 추가 범행까지 드러나고 있다. 30년 넘게 미궁이던 사건들이 해결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은 자연스레 지역 미제살인 사건으로 쏠린다. 도내 미제살인 11건은 공소시효 적용을 받지 않아 범인을 잡으면 모두 처벌이 가능하다.

전북일보는 도내 미제살인 사건이 모두 해결되기 바라며 11차례에 걸쳐 각 사건을 재조명 한다.

더불어 사건 해결을 위한 독자들의 제보를 기다린다. 해당 사건들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작은 기억이라도 전북일보(사건팀 063-250-5585)로 제보해주기 바란다. /편집자 주
 

지난 2003년 1월 백 경사 피살사건 당시 용의자가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지난 2003년 1월 백 경사 피살사건 당시 용의자가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공권력이 살해당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경찰관이, 파출소 안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2002년 추석연휴 때 일이다.

유례를 찾기 힘든 전대미문 사건은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 신병을 확보하고도 증거를 찾지 못했다. 수천 명의 인원이 수색에 동원됐지만 허사였다. 당시 범행에 사용된 흉기와 사라진 권총은 어떤 노력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경찰은 당시 찾지 못한 증거물이 나오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2002년 9월20일은 추석연휴 첫날이었다. 모두가 명절 연휴에 들떠 잠들었을 그날 새벽 0시50분 전주시 금암2파출소는 백선기(당시 54세) 경사의 혈흔으로 물들었다.

백 경사는 당시 혼자 파출소 안에서 근무 중이었다. 동료 2명은 순찰을 나간 상태였다. 쓰러진 백 경사를 발견한 것은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였다.

그는 목과 가슴 등이 흉기에 찔린 채 쓰러져 있었다. 동료 경찰관이 달려 들어가 지혈 등 응급처치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현장에서는 백 경사가 소지했던 38구경 권총과 실탄 4발, 공포탄 1발이 함께 사라졌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들어갔다. 전과자와 인근 불량배, 정신이상자 등 용의선상에 300여 명을 두고 조사를 시작했다. 사라진 총기가 2차 범행에 사용될 수 있어 전주시내 곳곳에 무장병력을 배치하기도 했다.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야 할 폐쇄회로(CC)TV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시 설치된 CCTV는 캠코더 형식에 비디오 녹화 방식이었다. 더구나 정상 작동하지 않아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에도 용의자 3명이 검거됐다. 20대 초반인 이들은 2003년 1월15일 전주시내 한 음식점에서 절도행각을 벌이다 붙잡혔다. 조사과정에서 이들이 백 경사 사건과 연관돼 있음이 드러났고, 범행일체에 대한 자백도 받았다.

이들은 피살사건 4개월 전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다 백 경사에게 단속을 당한 뒤 오토바이를 훔치기 위해 파출소로 갔다가 용의자 중 한 명이 소지한 흉기로 백 경사를 찌르고 권총을 탈취해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사건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경찰이 범행에 사용된 흉기와 사라진 권총을 찾지 못한 것이다. 용의자들은 현장검증까지 마친 2003년 1월24일 기존 진술을 뒤집고 경찰의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자백보강의 법칙에 따라 자백만으로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경찰은 용의자 진술에 따라 연인원 1만 명이 금암2파출소 인근 건지산 등을 수색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용의자들은 풀려났고, 시민단체 진정으로 조사를 벌인 국가인권위는 당시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상황에 당시 경찰 수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법조계 등에서 나온다.

경찰관이 혼자 있는 시간을 노렸고, 족적 같은 증거를 남기지 않은 채 파출소를 빠져나갔다는 점에서 총기 탈취를 노린 계획범행이라는 의견도 있다.

당시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전주 한 로펌 변호사는 “자백 사유가 뚜렷하지 않은 용의자들의 진술만 믿고 수사에 착수한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오토바이를 찾기 위해 4개월이 지나 파출소를 찾았다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자수도 아니고 음식점 절도범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살해 자백이 나왔다는 것도 상식 밖”이라면서 “당시 용의자들 동선 등이 정확히 나왔다면 정황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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