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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대배우의 알츠하이머
윤정희 대배우의 알츠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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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1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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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용 (주)쿠엔즈버킷 대표
박정용 (주)쿠엔즈버킷 대표

윤정희는 1960~1970년대를 스크린의 여왕으로 군림한 대배우지만 실제로 영화를 통해 본 적은 없었다. 남정임, 문희와 함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였다는 사실만 기사로 접했을 뿐이고 신트로이카인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에 이르러서야 고작 초등학생일 무렵 등하굣길 옆 담벽에 붙은 영화포스터로만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윤정희라는 배우에 대해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느끼는 향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당시 한국영화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자식 때문에 희생하는 여성들만 가득할 때였다. 이 때 윤정희라는 당돌한 여배우는 가련한 역할은 물론이고 백치미부터 세련된 지적 연기까지 능숙하게 해냈다고 한다. 그 당시 영화를 본 분들의 뇌리에는 그때의 윤정희 배우 모습이 아직도 살아 있다 하니 사람들에게 준 충격과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이 된다.

그런 분이 지금 10년째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다.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초기에는 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에서 문제를 보이고, 진행하면서는 점차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여러 인지기능의 이상이 동반되다가 결국에는 모든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한다.

일찍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치매환자 한 명으로 인한 가족의 희생과 사회적 비용의 크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마을 전체를 치매환자들이 사는 공동체로 만든 곳이 있을 정도로 사회안정망도 발전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 막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상태다. 때문에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을 돌보는 현실이 다른 신체 장애나 병에 걸린 가족을 돌보는 것과 현저히 다르다는 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알츠하이머는 다른 만성 질환보다도 훨씬 더 가족을 파괴하고 더 큰 재정적, 사회적, 감정적 희생을 만들어 낸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공개했었다. 예전에 암 수술을 받았지만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활로 돌아갔던 것과는 다른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직은 괜찮다고 느끼는 지금, 불행하게도 내가 앓는 알츠하이머가 점차 심해진다면 가족들이 힘든 경험을 할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내 인생 황혼기로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알츠하이머는 주로 고혈압, 당뇨, 높은 콜레스테롤을 원인으로 본다. 과음, 흡연도 요인이 된다. 예방에 도움이 되는 식품으로는 오메가3가 많이 들어 있는 들기름, 아마씨, 올리브유를 섭취하고 옥수수, 홍화, 해바라기씨 기름은 피하는 게 좋다고 한다. 평소 들기름을 먹지 않던 일본에서 들기름 열풍이 불었던 이유도 바로 치매 예방 효과 때문이었다.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 되면 어린아이가 되어 간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헌데 환자들의 기억이 점점 좁혀들어 가더라도 계속 남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한다. ‘내 생애 봄 날은 간다’라는 노래처럼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행복했던 ‘봄 날’의 기억은 아스라한 추억처럼 사라져 가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에게 ‘봄 날’의 기억은 점점 또렷해지고 강해지는 한 줄기 끈이 된다. 아무리 힘들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때에도 우리를 살게 만드는 힘이 바로 자신의 행복한 기억에 있음이다.

/박정용 (주)쿠엔즈버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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