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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찐 고양이법
살찐 고양이법
  • 권순택
  • 승인 2019.11.20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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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논설위원

‘살찐 고양이’라는 말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프랭크 켄트(Frank R. Kent)가 1928년에 출간한 정치적 행태(Political Behavior)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당시 정치자금을 많이 내는 부자나 특혜를 입은 부자들을 살찐 고양이로 비유했다. 1960년 미국 대선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부유층으로부터 많은 선거자금을 지원받는 존 F. 케네디 후보에 맞선 휴버트 험프리 후보가 “나는 살찐 고양이(fat cat)의 지원을 받는 후보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살찐 고양이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를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당시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등 대형 투자은행들이 파산하면서 금융업계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으로 어려움 겪는 상황 속에서도 미국 월가의 은행가들은 거액 연봉과 보너스에 세제 혜택까지 누리자 이들의 행태를 비꼬아 살찐 고양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살찐 고양이법은 공공기관 임원의 급여를 제한하는 법령이나 조례를 일컫는다. 프랑스는 지난 2012년 공기업의 연봉 최고액이 사내 최저 연봉의 20배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에서는 매년 최고경영자의 연봉이 직원 중간값의 몇 배인지 공개하도록 규정해놓았다. 스위스는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 결정하도록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민간기업 최고경영자와 공공기관 임원 연봉을 각각 최저 임금의 30배, 10배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최고임금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4년째 법안 심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자치단체에선 지난 5월 부산시에서 처음 살찐 고양이법 조례가 제정, 공포됐다. 시의회에서 조례가 통과됐지만, 행정안전부의 반대와 부산시장의 공포 거부 등 2차례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시행됐다. 이후 7월에 경기도가 2번째로 도입했고 울산시 경남도 대전시 등도 잇따라 제정했다.

전라북도는 정의당 최영심 도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살찐 고양이 조례’가 지난 19일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를 통과했다. 앞서 두 차례나 보류됐지만 도내 공공기관장과 임원의 연봉을 최저임금의 각각 7배와 6배 이내로 제한하는 원안대로 가결돼 본회의 의결을 남겨 놓고 있다. 살찐 고양이법이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해소해 나가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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